쓰는근육 16
즐거움에 무던하고 슬픔에 열정적인 나는 삶의 갑작스러운 불행에 취약하다. 누구나 그렇다고? 그럼 이건 어떤가. 나는 그런 날 잘 알아, 들이닥친 역경 앞에서도 굳건히 이길 수 있는 마음의 갑옷을 자주 점검하는 편이다. 때때로 아주 행복할 때도 나는 마음 깊숙이 어둠의 창고를 슬쩍 열어본다. 녹슬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할까 그 갑옷을, 혹은 그 문고리를 문대보는 것이다. 그럴 땐 지독한 상상력이 꽤 도움이 된다. 치약같이 쥐어짜 낸 최악의 상황이 또 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모순적이게도 삶에 종종 찾아오는 사소한 불행을 당해낼 재간은 아직 없다. 튼튼해 보이는 철갑 사이 나도 모르는 새 갉아진 작은 틈 사이로, 그 틈을 간신히 통과할 만큼만 작은 고통이 나를 찌를 땐 맥없이 무너진다. 그럴 땐 어이가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가, 눈물이 난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분노의 눈물이다. 나는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되고야 만다.
거대한 태풍은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지만, 종종 창문을 매섭게 두드리는 소나기는 다르다. 어차피 흠뻑 젖어버릴지라도 내 몸집보다 작은 우산 하나에 철저히 의지한다. 그동안 나는 그런 작은 안정감을 찾아다녔다. 어차피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슬픔과 고통일지라도 현실의 땅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날아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그 무언가. 그것은 대체로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그들이 우산이 아닌 솜사탕이었음을 알게 되며 나는 감히 의존이란 말을 붙일 수 없는 아주 작고 하찮은 것들에 기대게 되었다. 이를테면 반짝이는 스티커, 겨울엔 따뜻한 울 목도리, 뜨개질로 만든 손가방, 책, 펜, 핸드크림 등.
얼마 전, 몸이 성치 않은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주말, 또다시 생각지 않게 찾아온 고통에 조금 몸서리쳤던 날에 나를 구해준 건 '샷 추가한 말차라테 한 잔'이었다. 쌉쌀하고 떫은 말차는 평생에 불호일 줄 알았는데 별일이었다. 아주 작게 뚫려버린 손톱 밑 상처에 초록색 밴드 하나를 붙인 기분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평화로워지는 기분.
불행에도 짝이 있는 걸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을 열어둔다는, 하늘은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허락한다는 그 말을 믿어보게 된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슬픔 속에서 간혹 안정감을 느낀다. 또 어떻게든 그 시간은 지나가리라는 작은 희망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이다.
202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