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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지 Jul 04. 2023

차마 못 참는 것들

쓰는근육 17


"이건 못 참지"

지금은 꽤나 지났지만 한 때 하루 한 번은 꼬박꼬박 들어왔던 유행어다. 요즘도 간간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쓰고 있는 걸 보면 이제는 관용표현으로 굳어진 것 같다. 특히나 이 표현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를 떼어보면 부정적이면서도 괴팍한 느낌이 들지만, 그리고 한 때 그런 의미로도 쓰였던 말이지만 지금은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말버릇으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못 참는다는 것이 이렇게 귀여워질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아직도 이 표현을 모르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면 이렇다. 진짜로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다고 하자. 그 아이돌의 팬싸(팬사인회), 공방(공개방송), 출근길(음악방송 출근길에 포토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시간)을 꼬박꼬박 챙길 정도로 사랑하는. 그 정보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같은 처지의 팬들과 그 아이돌 당사자,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트위터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정도로 열정적인. 아무튼 그렇게 오늘도 타임라인을 훑다가 어떤 금손(손재주가 좋은 사람) 팬이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의 일러스트를 넣은 키링을 만들어 무료 나눔 한다는 글을 봤다. 그러면 어떻다? 이건 절대 못. 참. 지


이 표현은 비단 이런 덕후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진 않는다. 맛집으로 유명해진 베이커리에서 한정판 메뉴가 새로 나왔을 때에도, 너무 귀여운 강아지 스티커를 발견하고도, 매번 매진 행진을 거듭하는 코스매틱 제품이 몇 년 만에 20% 할인 이벤트를 한다는 걸 아는 즉시 우리는 '못 참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못 참는다'는 표현을 쓰게 된 걸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관용이 미덕인 선비의 나라 백성들이 아닌가.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물론이고, 우리는 자식을 낳으면 '네가 언니니까 참아', 반려동물을 키우면 '기다려'를 제일 먼저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미국에서는 "I can't wait"이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관용어로 쓰였지만 우리는 조금 달랐다. 그동안 뭘 하든 참는 게 미덕이었고 '이건 못 참지'라는 말을 할아버지 면전에서 했다면 "예끼 이놈아"라는 소릴 단박에 들었을 수도 있다. (물론 나의 이 한 문단이 조금 과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좋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기쁘다. 숱한 참는 버릇 속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보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참고 참다 화병이 걸려 죽지 않아도 된다. 그리 오래 살았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세기의 1/3 기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결국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꿨다고 자부한다. 몇 백 년 전 시민혁명도, 노예해방운동도, 몇 십 년 전 여성 참정권 운동도 그랬다. 오늘날 못 참는 자들 역시 그들과 닮았다. 기존의 성별, 사랑, 가족, 자연, 동식물의 개념을 바꾸는 사람들은 모두 참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변화는 대 환영! 이건 못 참지!



20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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