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습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겸 Aug 12. 2023

왜 이렇게 됐을까?

스스로 태어나는 것을 예견하고 ‘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신 ‘왜 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은 종종 던져보지 않을까.


일상을 챗바퀴처럼 굴리다 보면 종종 ‘왜’라는 물음에 다다른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일말의 기대도 져버리게 만드는 회사,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회의. 모든 것이 나를 옥죄여온다. 난 최소한의 합리화라도 하기 위해 ‘왜’를 던진다.


‘난 왜 여기서 이런 업무를 하고 있지 ‘


난 기자라 해도 취재기자가 아니다. 인터넷 기자일 뿐. 심지어 일보에 파견 나간 뒤로는 취재도 하지 못한다. 신입 9개월 차. 나는 뭐 하고 있는가?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가 ‘일이 없어서’다. 일을 너무 하고 싶다. 배우고 싶은데, 일이 없다. 취재기자가 내게 정보를 주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나마 정부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긁어 붙이기 할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언론이 하는 제대로 된 역할이 뭔가 싶다. 내부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난 기자가 아니라 ‘인력‘이라고 표현된다. 그들은 ’ 저널리스트‘다. 우리에 대한 기자협회보의 기사를 보고 계속 울었다. 내가 이런 취급, 이런 역할을 받으려고 일을 하나.


그렇다고 당장에 퇴사를 해서 이른바 ‘언론고시‘를 볼 수 있지도 않다. 그놈의 가난한 부모, 불우한 가정환경.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겐. 그래서 망설여진다.


그래서 다음 주에 탐사 보도를 주로 하는 매체의 기자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려고 한다.


생을 글을 쓰며 마감하겠다고 다짐했던 내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책도 많이 읽고 영어, 한국어 자격증도 딸 것이다. 그래서 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았다고 나중에 세상에 나올 내 자식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왜’라는 물음을 HOW로 바꿀 거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 특히 그놈의 ‘저널리스트’ 들이 나를 어찌 보든 상관없다.


나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또 노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도 당장에 답답함이 있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이라도 올려본다. 답답한 나의 조용한 고함이다. 글은 내게 가장 큰 반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주저리주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