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인식론과 반성폭력 운동
* 이 글은 한국성폭력 상담소에서 기획한 책 <성폭력에 맞서다>의 '제2부 반성폭력 운동 담론을 말한다' - '제6강 여성주의 인식론과 반성폭력 운동'의 내용 중 여성주의 인식론의 전제와 주장을 일부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여성 정체성에 새겨진 폭력]
우리는 언제 폭력을 나쁘다고 느낄까? 인간 사이의 차이를 말살하고 완전한 타자로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을 때다. 역사 속 가해자들은 자신은 인간을 죽이는 게 아니라 여자, 동성애자, 이교도, 흑인을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정당화' 했다. 특히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가 타자화된 집단에 내린 뿌리는 대한 인식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문화로 포장하게 만들었다. 이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폭력을 당한 여성이라는 위치를 불가능하게 해야한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는 '각인된' 동시에 '은폐된' 폭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마 유영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연쇄살인은 국가 정당성을 보증하는 폭력의 통제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p226 그렇기에 그는 더욱 잔인하게 여겨졌다.
영화 <추격자>에서 범인이 (여성에 대한) 실패자로 인식되는 부분이 있다. 그가 죽였던 출장마사지사와 연애중이었고, 그가 발기부전이라는 진술이 나오고 나서다. 그리고 그의 잔인함은 다소 약화된다. 실패자로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살인을 했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악마화되는 포인트가 있는데, 출장마사지사가 아닌 '일반 사람'인 노점상을 죽였다는게 밝혀지는 부분이다. 언론에서 출장마사지사 여성들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는 동기에 이목이 집중됐다. 반면에, '일반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동기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의 잔인함에 주목한다. p228
흔히 우리는 성폭력이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처의 핵심에는 '자신이 인간답게 취급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다. 사회, 정치적 분노는 나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는데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을 때 생겨난다. 그러나 대다수 오직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훼손으로만 취급할 뿐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받은 상처는 이야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