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되기 시작하니, 우리 엄마가 자꾸 떠오른다

임신했을 때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by yololife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입덧하기 시작했다고 두렵다고 말을 했다.


"딸은 엄마 따라간다는데, 엄마의 입덧은 어땠어?"


"엄마는 임신하고 너 낳을 때까지 진짜 아무것도 못 먹었어. 입덧하느라고 진짜 아무것도 못 먹었다.
너희 아빠는 엄마가 입덧을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데 음식 한번 사다준 적이 없었다."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돈을 벌다가 25살에 지방 도시로 내려와서 아빠와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는 아빠가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시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시아버지는 무뚝뚝함과 호통으로 엄마를 시집살이시켰다.

거기에 시동생이 어려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같은 지붕 아래지만 분리된 방에는 고모네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결혼 중매로 아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빠가 집이 있다는 말에 그래도 어느 정도 살겠지 하고 외할머니가 결혼을 밀어붙이셨는데 시집가서 알고 보니 진짜... 집 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빠의 작은 월급으로 시동생 학비를 대고 살림을 하다 보면 한 달의 반도 지나지 않아 쌀이 떨어졌다고 한다.

옆집에서 겨우 쌀을 빌려서 밥을 하고 식구들 빨래를 하고 시동생, 시아버지 도시락을 하루에 두 개씩 쌌다고 한다.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나를 임신을 하고서도 그 많은 집안일을 하며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일을 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는 바람에 요리도 전혀 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으니 어떻게 요리를 시작했을까.. 과연 상상도 안된다.

지금도 그때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아빠가 임신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다는 그건 잊을 수가 없다고..

입덧을 시작하고 출산할 때까지 입덧이 계속되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 먹고 나를 낳았다고 하셨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막냇동생도 시골에서 우리 집이 있는 도시로 상경해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와 같이 살면서 엄마의 동생 도시락도 두 개씩 추가되었고 뒷바라지도 함께 하셨다.

아주 작은 나를 키우면서 두 살 터울인 내 동생을 임신하고 또 출산하고 키우면서, 매일 할아버지, 삼촌, 외삼촌 도시락을 5개 싸고 지금의 청소기와 세탁기 없이 모든 걸 손으로 집안일을 해내는 초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우리 엄마는 늘 집안이 정리 정돈되어있어야 마음이 편한 깔끔한 성격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런 엄마의 삶을 보고 자랐지만 철들고 나서 가끔씩 엄마가 해주는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나씩 더 알게 될 때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삶이 더욱 안쓰러웠다. 옆집에서 쌀을 빌려서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또한 충격이었다.

그런 젊은 엄마의 삶을 내가 보상해주듯 엄마도 늘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많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난 후에 결혼을 하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중에 내가 예상보다 너무 늦게 하는 것 같아 점점 걱정은 했지만..)





우리 세대의 엄마들은 모두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내가 임신을 한 후로 회사만 겨우 왔다 갔다 하고 집안일은 남편이 전적으로 다 하고 있다. 우리 두식구의 집안일도 남편이 허덕이면서 하는데, 나보다 한참 어렸던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면서 나를 뱃속에서 키우셨을까? 임신을 하고 이제 첫걸음인 입덧을 시작했는데 벌써 힘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힘들 텐데 엄마는... 어땠을까?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친할아버지가 따뜻한 말은커녕 제때 밥을 차리지 않으면 호통치시는 걸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지라 잘 알고 있고, 우리 집에서 누구 하나 엄마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었다. 마음 다치지 않으면 다행한 하루였을 것이리라.

아빠도 전형적인 우리 세대의 아빠라서 그 시대에 매일 잦은 야근과 주말에는 1박 2일 낚시를 하러 다니고, 집에 있을 때면 꼼짝없이 누워서 TV만 보고 있던 모습만 기억이 난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는 그래도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말을 하셨었다. 어렸을 때 생각하기로는 '엄마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안 해서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그 많던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같이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거나 거의 남자들뿐인 가족들 중에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해줄 누군가가 한 명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고 이제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힘들었던 것을 어렸을 적부터 헤아린다고 생각했었지만, 임신하고 나서 엄마를 생각하니 이제야 진짜 알 것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우리 엄마를 조금 더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시작하니, 우리 엄마가 자꾸 떠오른다.

내 나이의 우리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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