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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May 17. 2024

건강 염려증을 버리기로 합니다

간병 스트레스

작년 이맘때쯤, 우리 가족 모두 가족 여행을 떠났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5월의 장미 앞에서 저마다의 사진을 찍었다. 7월엔 가족들 일부해외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므로 누군가의 마음속엔 기대감이, 또 누군가의 마음속엔 아쉬움과 부러움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인증 핫플레이스에서 돌아가며 눈치껏 찍은 사진들 중 몇 개의 사진은 마지막이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해외 생활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불현듯 자유를 잃고 새장 속에 갇힌 인어공주있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지금까지, 그녀10년 같았을 지난한 시간들이 렀다.


인어공주라 할지라도 유유히 유영할 깊고 푸른 바닷속이 아니었던지라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 인어공주인데 뚱하게, 새 장 속에 갇혀있는 꼴이라 원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던 나날.

목소리 대신 말을 잃은 터라 새장 속에서도 새처럼 노래할 수 없 편마비가 와, 바닷 속이든, 새장 속에서든 그 어떤 움직임도 가뿐하지 않던 시간.


그 와중에 한꺼번에 찾아온 불행 하나가 찾아왔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음에도 버거웠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비극 허용 한계치를 벗어났달까.


사실, (生)사(死) 사이에서 그 저울추가 사(死) 쪽으로 기울어졌다가 인생의 궤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고 살았다는 다행스러움보다 욕망의 기대감과 설렘에 한껏 부풀어있던 이들에게서 절망감과 상실감이 더 명확히 비쳤다. 감흥 없는 위안 삼는 일밖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족 모두,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저마다

뇌 안에서 터진 핏줄 하나와 뇌 안에 다시 자리 잡은 전이된 종양 하나로 산산조각 난 일상의 잔해들 앞에 한참 주저앉아있었다.


찢어진 게 풍선 조각이든, 깨진 게 도자기 조각이든. 그 어떤 것으로도 이어 붙일 엄두가 나지 않 멍해 채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이내 기능을 잃고 푹 꺼진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간병인이 되었고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또 다른 이는 낯선 외국 거주하며 세 아이를 기르는 보모가 되었다.


느 정도 예상한 일이든, 예상치 못한 일이든,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다른 관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은 한 번뿐. Y.O.L.O(You live only once)를 외치며 무모해질 수 없었다. 아모르파티(amor fati)를 되뇌며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보겠다, 말할 수 없었다. 가족 공동체에 닥친 이 비극 속 운명마저 사랑할 수 없었다.


'곧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막연한 기대를 담은 응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도 해결되지 않는 마비된 두 손가락들 앞에, 세 손가락은 그저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멀리 내다볼 겨를이 없어 다만 하루씩만, 버텨보자고 다독거리며 이를 앙당 물었다. 하지만 제각기 기질과 성향이 다른 세 손가락 사이에서도 분란이 일었다. 아픈 가족을 무턱대고 응원하고 북돋아주기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저마다 분주했으니까.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자,

그 와중에 즐길 수 있는 건 즐겨보자.

페이스가 긴 싸움에서 너무 초반부터 내달리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니, 페이스 조절을 하자.


애써 쥐어짜 낸 격려의 말들은 한껏 예민해진 몸과 마음에서 분노를, 원망을, 비난 자아낼 뿐이었다. 이내 저마다 길을 잃었다. 그리고 잠을 잃었다.


뇌종양과 뇌출혈 발발은 '가족력'이라는 단어로 이어져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가족의 비극에, 안타까움과 동시에 가족력에 대한 주의와 경계의 말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팔랑귀인 내 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뚜렷한 병이 없음에도 지나치게 건강을 염려하면 불안한 마음이 실제로 '신체증상장애'를 일으킨다고 한다. 실제 그런 뇌신경 메커니즘이 작용된 건지 한동안 이유 없이 낮엔 피로감과 소화불량, 어지럼증을, 밤엔 불면증을 겪었다. 거기에 우울, 불안, 분노 등의 기분 증상이 더해졌다.


의학적으론 이를 유발하는 원리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고 한단다. DMN은 신체 감각이나 감정, 스트레스를 처리하고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데... 신체증상장애 환자들의 경우 DMN의 연결성이 저하된다는 거다. 뇌신경의 감각 처리 능력이 왜곡되면서 신체적 증상을 증폭시키거나 과반응하게 만든다는 것.


 외에, 부정적인 뉴스만을 취합해 두려움과 걱정으로 응축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한번 열린 판도라 상자 속 걱정병은 추천 정보 알고리즘에 걸려 더 세력을 키웠다.

알고리즘이 이끌어주는 ‘필터 버블’에 갇혀 뇌종양과 뇌출혈에 대한 일방적인 정보에만 노출되었다. 그리고 곧 우연의 일치에서 굳이 숨은 관계를 파악하고 싶어 하던 인간의 심리는 가족력으로 귀결시켰다.


벌어나지 않은 미래의 걱정에 사로잡힌 채로, 그나마 온전한 현재까지 꺼트릴 수 없었다. 매 순간 도모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사로잡힌 내 일상을 쪼개고 쪼개 작은 실천들로 분할시켰다. 건강하게 살기 위한 비책이 나온 뉴스들을 검색하고 하루하루 실천에 옮긴다. 내 삶에서 거창한 포부 따위, 대단한 성취 따위 걷어내고.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삶을 다행이라 여기며 아픈 손가락들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작은 삽으로 희미해진 희망을 퍼다 나른다. 때로 예기치 못한 한 순간의 사고로 생의 기회마저 갖지 못한 누군가의 비극을 힐끗거리며, 못된 위안을 삼기도 했다. 우리에게 닥친 비극은 영속적이지 않을 거라고, 그 트라우마가 일상 집어삼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서로에게 속삭였다. 불안한 서로의 감정이 전이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은 무모하도록 긍정의 말들기대어 살 때라며.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새로울 것 없는 문장을 붙잡고 빗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운다. 힘 풀린 팔로라도 서로를 꼭 붙들어 안는다. 폭풍우가 가시고 빛줄기가 깃드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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