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히 저출산 키워드와 더불어,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지역, 출연료 묻지 않고 무조건 간다. 자비를 들여 새벽 메이크업을 받고서. 어눌한 말솜씨여도 철판을 깔고서. 1년 내내 일적으로 큰 이벤트가 없는 프리랜서에게 인터뷰는 그게 몇 분이든 손에 꼽는 행사다. 1년 내내 사적으로도 혼자 홀가분하게 떠날 일이 없는 육아일상 속 엄마에게 대단한 명분의 이벤트다.
신촌에서 있었던 4월의 인터뷰로, 간만에 설레하며 KTX를 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고 아침 거리를 준비해 놓았다. 6시에 메이크업을 받았다. 8시 30분에 등교를 시키고 커피를 하나 들고 가뿐하게 탔던 9시 45분 기차. 가족들의 병원 방문 이슈로 간 서울행이 아니어서 더 발걸음이 총총이 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가는 길은 이렇게도 가벼웠건만 막상 어수룩한 대답들을 던지고 내려가는 길엔 마음 한 편 축 늘어져있었다. 잊고 지냈던 난임 챕터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스치고 지나가, 여러 생각들 속에 새초롬해졌다.
난임일상 속에서 새로 고침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난임일상을 다시 감내하고서라도 임신과 출산을 겪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하지 못했다.
난소기능검사 수치 0.87로 이식은커녕, 난자 채취 단계에서 버벅거렸던 나의 난임 일상.
신혼살림에 난임 1차 시도할 때마다 그때 당시 520만 원가량의 돈을 흩뿌렸던 시기. 불안함과 두려움, 자괴감 사이를 아슬아슬 걸으며 한껏 예민해져 있던 그때. '난자 공난포'를 겪고 나서 또다시 몇 백짜리 배주사가 내 뱃속에서 공중분해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뒤척이던 숱한 밤들. 친정엄마를 비롯, 애먼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꼬여있던 날들.
난임의 끝이,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을 알고 있는 지금에도 쉬이 엄두가 나지 않는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한숨 내려놓았을까?
터널의 끝을 모른 채, 무작정 어둠 속을 걷던 난임 터널. 희미하게, 한 자락 볕이 들던 끝자락에서 임신 수치를 받아 들고 나서도 마음 편히 걷지 못했다. 중간중간 붉은 피가 비쳤고 샛노란 위액을 쏟아졌다. 고장 난 호르몬은 들쭉날쭉 널을 뛰었다. 배뭉침이 있을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해 잠을 못 이룬 밤이 또 허다했다.
이런 이유로 육아의 짠맛, 쓴맛보다 단맛이 훨씬 강렬하다는 것을 경험한 지금에도,
나는 난임이어도 괜찮아
의연하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게 난임은 여태 쓰라린 상처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다.
난임의 관문을 넘어, 희열의 임신 트랙에 접어들고 장렬하게 출산의 테이브를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악이던 쌍둥이들을 유모차에 싣고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퀭한 눈으로, 산책길을 걸던 어느 날,
남자, 여자 쌍둥이. 이란성쌍둥이요?
의아한 눈빛과 함께, 이란성쌍둥이를 어떻게 임신하게 되었는지 굳이 확인하는 그 질문을 마주했다.
의도가 뻔했던 질문이었던지라 우물쭈물 '시험관 했었어요" 대답했다. 유모차를 끌고 휘리릭 지나갈 일이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차렸던 예의의 대가는
'양식장에서 낳은 아이들'
이라는 해괴한 표현으로 돌아왔다.그러다 '남자, 여자 쌍둥이들은 전생에 부부였다더라...'비과학적이며, 음흉한 '카더라' 이야기에, 함께 그 말을 듣던 친정엄마는결국 낯선 어르신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새로고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는 말에, 난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야기했다. 초혼 연령 증가, 환경 호르몬 노출 증가 등에도 불구하고 난임을 겪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을 통해 낳은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 등이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저출산 시대에, 그럼에도 귀한 생명을 함부로 하고, 아이들을 학대하기도 하는 이 시대에... 기꺼이 난임의 강을 건너서라도, 임신을 하고 출산을 겪어 한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엄마가 되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위대한 도전 속의 난임환자들은 환자라는 단어가 아닌 더 뜻깊은 단어로 불려야 한다. 지난한 기다림과 간절한 기도로 태어난 아이들이 양식장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 2024년 4월 24일 자 한 기사에서, 난임 치료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한방병원 앞에 수십 개의 텐트 행렬 사진이 싣렸다. 진료받기 위해 난임부부들이 텐트까지 동원해 한밤중부터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막연한 희망 속 절실한 노력 행렬들에도 아니나 다를까 비아냥과 성희롱 발언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