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육아 지적 vs 살림 지적

9년 차 쌍둥이 부모의 어느 주말 단상

보통날의 주말엔,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는 온 가족이 근교로 나간다. 저번 주말엔, 일정이 조금 달랐다.


아이들 체험 수업 및 심리 상담 예약, 친정과 시댁 방문 등 일정이 빼곡했던 날이라 주말 동안 엄마(나)는 끊임없이 움직임 모드였고 아빠(남편)는 풀로 자유시간을 가졌다.


주말에 풀로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린 남편에게 일말의 양심과 무한한 감동을 기대했건만... 저녁식사 자리에선 요리에 대한 핀잔과 아이들에게 지적질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때부터 주방 집기 놓는 소리가 거칠어졌다.


나의 요리는 이러했다.


아침 : 해독주스와 찐 고구마, 계란, 과일 등 제공

점심 : 하모하모 샤브샤브 (내가 사드림)

저녁 : 차려드림


아이들이 흘리지 않도록 왜 개인 접시를 놓지 않았는지,

또띠아 피자를 먹기 좋도록 잘라줬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가 핀잔의 요지였다.


(엄마한테 이러려면 이거 만들지 마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이런 뉘앙스의 말이 들려왔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서, 아이들 앞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놓고 지적 및 핀잔을 준 것에 대해 항의했다.


평소 조근조근 말이 길거나, 아님 입을 꾹 닫은 채 시작조차 안 하고 꿍해있는 나와는 다르게, 다혈질 남편은 역시나 높은 언성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 기준에 성에 안 차는 살림 지적과 함께 나의 눈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남편의 입장은 이랬다. 본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내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사회생활로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말엔 늘 나들이에 동행하며 운전도 하고 잘 참여했다. 이번 주말에만 자기에게 일정이 없었을 뿐이다.


평소에 너에겐 평일 몇 시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느냐. 그런데도 살림은 자기 눈엔 엉망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의 입장은 이랬다. 평일 내내 아이들과 이렇다 할 교감 없이,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에게 잠자리에 들 것을 종용하는 남편이 늘 불만이다.


어느 날은 아들을 재우게 된 남편이, 잠자기 전 딸과 꽁냥꽁냥 이야기를 나누던 내게 소리를 질렀다. (본인은 소리 지른 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딸과 나는 말소리를 낮추며 무서워했다)


"그만 말하고 얼른 재워! 왜 자기만 자야 하냐고 울잖아!!!"


잠드는 시각, 누가 자기를 재워주느냐를 놓고도 공평, 불공평 논란이 이는 쌍둥이들의 잠자리는 대개 순탄치 않다. 잠자리를 분리하기 전엔 다 같이 도란도란 동화책을 읽다 잠에 드는 평화로움이 있었는데... 잠자리를 분리하고 나니 새로운 이슈가 생겼다. 그러다 종래에는 고성과 울음으로 마무리가 된 밤을 맞이한 거다.


내 기준에 성이 차지 않게_ 아이들과 교감이 없는 남편의 육아, 아이들 목욕시키는 횟수보다 세차하는 횟수가 더 많은 게 명백한 남편의 취미, 아이들 옷은 허드레 옷이어도 괜찮다지만 자신의 패션엔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남편의 취향.


남편 기준에, 너무 아이들에게 애착이 많은 아내의 육아방식, 평일엔 휴식 대신 취미를 택하는 아내의 성향, 드레스룸에 자신(남편)의 옷은 넘쳐나지만 A toZ 일사불란하게 정리된 자신(남편)의 단독 드레스룸과 다르게 요리 욕심은 많지만 정리를 잘 못해 꽉 찬 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아내의 살림법.


내 눈에_ 육아에 더 진심이었으면 좋을 남편은, 혼자만의 시간에 행복해하고 개인의 취향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남편 입장에선 평일의 쉬는 시간에마저도 더 집안일에 진심이었으면 좋을 아내는, 역시나 혼자만의 시간에 행복해하고 개인의 취향도 버리지 못한다. 육아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애착이 심한 편이고, 어느 정도 거리 두기와 방목이 필요하다 싶다.


육아가 시작된 이래로 생긴, 이 논쟁은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그른 것인지 결론 나지 않은 채로 답보 상태다.


결혼 후 우리는, 서로의 성향을 내려놓고
육아 후의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져버려야
비로소 완벽한 커플, 완전한 부모가 될 수 있는걸까?

 

다만, 아이들 등교와 동시에 요가 수업에 나섰다가 냉장고를 열었던 나는 넘쳐나는 냉장고 속에서 오래되어 상했을 법한 제사 음식을 꺼내버렸다.


운동 갔다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냉장고 정리 물품을 살까 하다, 또 다른 살림 핀잔을 낳을까 참고, 하교 13시 30분 전까지 냉장고 정리와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방도를 궁리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11시 30분.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2시간 남았다.

냉장고 청소와 점심을 해결하며 자유시간까지 누려야 할 나의 소중한 시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힘들다고 찡찡거릴게 아니라, 글 쓰지 말고 요가하지 말고 쉬던지 집안일을 해야지... 주말에 몰아서 하려니 힘들지.


(평일에도 하는 집안일입니다만,)


참고 글. 나는 전업주부로소이다

https://brunch.co.kr/@yoloyoll/134


A great marriage is not when the 'perfect couple' comes together. It is when  an imperfect couple learns to
enjoy their differences."

훌륭한 결혼은 완벽한 커플이 서로 만나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커플이 서로의 차이를 즐기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훌륭한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Dave Meurer
이전 01화 결혼 후 수면 패턴 단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