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발랄하고도 유쾌한 쌍둥이들. 그들은 늘 다른 콘셉트로 에너지 발산 중이었다. 한 뱃속, 서로 다른 공간에서 웅크려있던 그 순간부터 달랐다. 한쪽에선 내내 기척이 없어 궁금하게 하다가도 문득문득 소란스럽게 인기척을 하였다. 다른 한쪽에선 잔망스럽게, 자주 꿈틀거렸다. 수면 패턴은 각기 달라 한 아이가 잠들고나면, 다른 아이가 깨어
깽알거려서 긴 새벽을 보내게 했다.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채로 빈번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찡얼찡얼거리는 한 아이와 쨍하게 울어대는 다른 아이 사이에서 혼이 나간 채로 멍하게 눈물을 흘리던 한낮. 안아서 재워라, 짐볼을 태워라 다른 주문으로 잠투정하는 아이들과 함께_ 다시 밤.
숱한 밤을 건너서 아이들은 아장아장한 걸음을 넘어서 뛰게 되었다.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뛰는 아이들 사이에 우왕좌왕하는 내가 있었다. 오랫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 산발인 머리를 하고서 깊이 잠자지 못해 퀭한 눈을 멍하게 뜨고 곳곳이 침이 묻어있던 옷을 입은 엄마. 점점 잃어가는 내 모습에, 벗어나질 못하는 육아 굴레에, 열정은 희미해져 갔다. 육아서적을 들여다보며 다짐했던 현명한 부모 육아법도, 덮은 지 오래였다
똑소리 나는 육아는 나에겐 머나먼 이야기. 그저 생존 육아에 가까운 쌍둥이 육아였다. 아이들이 크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무뎌질 줄 알았지만 빈번히 무디 moody 했다. 그래도 잊지 않았다. 전동바운서보다사람의 온기가, 둘에게 모자랄 지라도 품 안이 더 좋다는 것. 형형색색 볼거리 많은 장난감보다 아이컨택이 더 좋다는 것, 기계음으로 흘러나오는 동요보다 음치일지라도 사람의 노랫소리가 더 좋다는 것. 거침없이 안았고 함께 노래 불렀으며 자주 춤을 추었다.
쌍둥이 육아 앞에 심드렁해질 때마다 춤을 췄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부채춤을 추고 돌아오니 '우리딸이 제일 뻣뻣해서 찾기 쉽더라." 엄마에게 말을 듣던 내가. 중, 고등학교 때도 학예회에서 춤 한 번 춰본 적 없던 내가. 클럽의 사이키 한 조명 속에, 요염한 자태로 춤추던 매혹적인 20 대란 없던 내가. 춤이라니.
뻣뻣하던 20대의 어느 날. 춤 앞에서 멋쩍은 내가 이대론 억울할 것만 같아, 댄스 수업을 수강해보기로 했다. 멋모른 채 춤 강좌에 등록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의 수업이었다. 목표는 하나였다.
'클럽에서 풋쳐 핸썹. 자연스럽게, 그루브 한 무드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쭈뼛쭈뼛하지나 않았으면. 연신 손사래 치며 되레 한껏 오른 분위기를 망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첫 춤 강좌에서의 주제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