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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그때와 나의 지금

코로나 일상 속 육아

by 김여희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은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면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가 아는 너는, 책을 즐겨하거나 마들렌 같은 디저트를 즐겨할 만한 남자는 아니 잘 모를 테지.


누군가에겐 마들렌이었겠지만 나에겐 계란빵이 그것인데.


엄마가 큰 프라이팬에 만들어주던 계란빵 향이 가끔 생각.

갓 구운 포근포근한 계란빵을, 흰 우유에 마시던 때.


계란빵 말고도 엄마는 꽤 많은 음식들을 집에서 만들어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아래층 이모와 윗 집 아이들, 옆 집 아이들 모두가 모였어.

지금으로 따지면 엄마표 요리놀이를 했었다.






엄마가 육아를 하던 시절과 내가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은 년수로 따지면 30년 차이 즈음 나는 것 같은데...

참으로 다르다.


가끔 엄마가 들려주던 그때의 이야기가 너무도 아득하게 들린다고 할까.


비가 오면 온 집들을 돌면서, 빨래를 걷어주던 때,


종종 서로의 아이들을 맡아주던 때,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지니, 아래층 이모가 물을 끓이고, 옆 집 할머니가 우리 집 둘째 동생을 받아주었다던 그때.


지금은 간혹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집 아이들을 만나도 인사를 나누지 않을 때도 있고


심지어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되는데 말이야.








가끔 엄마 세대의 저력이란 것에 생각해본다. 우린 '82년생 김지영' 으로라도 볼멘소리를 하긴 하지만

우리네 엄마들은 싫은 소리 없이 그 많은 걸 감내했다지. 할머니 세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엄마는 '우리 엄마'이면서도, 가끔 내가 투덜거리는 것들에 대해 공감을 못할 때가 많아.


'우리 딸'이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마 다른 곳에선 "요즘 아이들은... 쯧쯧"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 때엔, 코로나19 바이러스 따윈 없었잖니.

과정 속에 불편함은 있었을지언정

매 순간순간의 두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각박해지고 자유가 사라질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싸돌아다닐걸, 더 많이 부대낄걸,

더 많이 방황할 걸 지나간 것들이 참 아쉽다.


소중한 지 모르고 무턱대고 흘려보냈던 많은 것들이 말이. 일상의 조각조각, 놓치지 않고 누릴 일이었어.








한번 간 김에 온 몸의 때란 때는 다 밀고 올 기세로,

엄마가, 세 딸들의 때를 밀어주던 목욕탕 일상이 그립다.


트럭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후후 불며 어묵꼬치를 먹고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마시던 때가.


(요샌 붕어빵이 2개에 천 원이라 그 돈마저도 아끼게 되더라.)


춤은 잘 못 추지만 클럽에서 엉성한 춤이라도

더 흥에 겨워 출 것을.


그땐 뭘 그렇게 의식했을까.


여권 위 숱하게 찍힌 스탬프들을

소중하게 매만지면서도


여태 자리 못 잡고 이리저리 떠돌기만 한다는,

8층 첫째 딸내미 소리라도 듣게 될까 봐

왜 마음을 썼을까.


붕어빵 하나를 안 사주면서 말만 보태는 사람들 따위 신경 쓸 일이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마음 쏟고 신경을 쓰던 많은 것들 중에 불필요한 것들이 꽤 많았다.


나에겐 계란빵 하나로도 떠올려보는

노릇노릇한 어린 날의 기억이 많은데

너에게 너의 어린 날을 물으면, 어떤 말을 할까.


계란빵 향만큼 향긋하거나 포근포근할 것

같지 않을 걸 알기에_묻지 않으련다.


그러나 저러나, 어쩔 수 없는 코로나 일상이라도

하루하루 잘 살아보려 해.


이런 오늘마저도, 소중했었다...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를 일이잖니.


너는 이제, 좀 평화롭길 바란다.

무한한, 너의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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