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팥죽만 보면 목이 메고 울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순전히 팥죽의 색깔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못난 마음을 한 솥 가득 넣고 끓이면 꼭 그런 색과
모양이 될 것 같아서다.
휘저을수록 검어지고 퍽퍽해지는 것까지 영 손쓸 도리 없는 풍경이다.
-단어의 집, 안희연
나에게 팥죽이란 '손 내밈'이다. 특히나 친정엄마에게 내미는 손일 텐데...
그 손짓엔 늘 미안함과 화해의 제스처가 담겨있다.
다른 이에게보다 엄마에게 퉁명스러웠을 때,
그 퉁명스러움이 선을 넘어 '아차'하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 끝에 대부분 팥죽이 뒤따른다.
팥죽.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김이 모락모락 하는 팥죽을 앞에 두고, 쭈뼛쭈뼛 만회할 말들을 생각하기보다
엄마의 그릇에, 황설탕을 한 숟갈 듬뿍 넣어준다.
어제는 정월대보름이었지만 팥죽 한 그릇 사주고 팠던 엄마의 생일이기도 했는데...
며칠 전, 역시나 팥죽을 좋아하시던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가 없는
첫 생일이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아이를 낳고 보니, 생일이 나를 위한 생일이라기보다
나를 낳기 위해 수고로움을 넘어서 고통스러웠을 엄마를 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도리어 눈물이 나오지 않아
머쓱했다고 하던데.
엄마의 생일, 어제... 엄마는 뒤늦게서야 외할머니가 문득 그립지 않았었을까.
다 같이 모여 앉아 팥죽을 나눠먹던 그 순간이 생각나 뒤늦게 먹먹해지지 않았었을까.
멀리 떨어져 있어, 팥죽 한 그릇 사주지 못했지만
팥죽에 설탕을 담뿍 넣고 휘휘 저으며
설탕이 녹아가는 걸 보며
괜한 침을 삼키지 않았었을까 싶다.
엄마도, 나도.
어제 엄마에게 팥죽을 사주며 내밀고 싶었던 건, 위로가 담긴 손이었다.
투박한 엄마 손을 한번, 살갑게 못 잡는 딸이
손 대신 내미는 팥죽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