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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Mar 03. 2021

오만 자동차 여행

가끔, 헤매어도 괜찮아

두바이에서 국경을 넘어 오만의 소도시를 차로 여행하기로 했다. 무모한 계획이었다.


해남 땅 끝에서 강원도까지도 차로 여행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도, 시시때때로 잘못 접어들어 기어코 돌고 돌아가는 일이 허다한 사람이. 영화를 보다 300만 달러라는 자막이 나오면 바로 계산이 되지 않아 기어코 계산기를 찾아드는 사람이.


그렇게 숫자와 축척에 철저히 약한 사람이, 와이파이도, 네비게이션도 없는 자동차 여행길을 떠나기로 했다.


지도 한 장과 여행 가이드 책 한 권 뿐이었다. 그리고 오만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신밧드의 나라라는 동화 같은 정보.






다행히 이 까마득한 자동차 여행에 함께 탑승하게 된 동승자 여행 메이트는, 나보다 숫자적으로 월등한 친구였다.


과학고를 나와 의과를 전공한 수학 천재와 철저히 문과 성향, 수포자의 동행이었다. 운전 실력도, 지도를 읽어내는 능력도, 모두 다 가진 사람이 그 친구라는 게 맹점이었다.


철저히 낯선 나라에서, 빈곤한 거리 표지판에 의존한 채 처음 가는 길의 방향을 파악하고 운전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교대로 운전하기로 했다.


친구가 운전대를 잡을 때면 그는 내게 지도에서 방향 읽어내고 축척을 바탕으로 거리를 계산해보기를 종용했다. 운전석에 앉아, 깨알같이 그려진 지도에 아랍어와 영어로만 표기된 지도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east, west, south, north 지도에 그려진 나침반과 현실에서의 동, 서, 남, 북은 분간되지 않았다. 축척과 방위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는, 앞으로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라는 말에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여행까지 와서 꼭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나.
가다가 모르겠으면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괜찮아...)

답을 못 도출해낸 죄로, 목소리에선 힘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계획성 있게 잘 짜인 여행 루트에 얽매이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일본 영화 '안경'이 있다. 


인터넷과 내비게이션도 OFF,

축척과 방위로 거리 계산도 OFF.

때론 ‘모두 꺼두셔도 좋습니다’.


바짝 내세워진 안테나를 접고 무심히 흐르는 자연 풍경에 빠져도 괜찮은 것.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좋은’ 그런 히든 플레이스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80M 더 가서 오른쪽.‘ 때론 연필로 오묘하게 그려진 지도 한 장을 받고 웃음 짓는 포인트를 만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멈춰 선 오만의 작은 식당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길을 물어봤을 뿐인 동양인 여행자들에게 할아버지는 흔쾌히 초대를 해주셨다.


정확한 집주소 대신 '마을 어귀 앞 큰 나무에서 만나.'

말만 남기고서 먼저 자리를 뜨신 할아버지.






 큰 나무 아래 염소 떼를 지나 바닷가를 거닐다 벽에 찍힌 너구리 도장을 좇아 걷다 보니 FLAGSTAFF HOUSE라는 이름의 할아버지의 2층 집에 다 닿았다.


영화 속_ 느리게 단팥을 끓여 팥빙수를 내어주던

사쿠라 할머니 대신, 영국인 할아버지는 예멘 커피를 천천히 내려주었다. 영국인이지만 어쩌다 들른 오만이라는 나라가 좋아, 오만 인으로 귀화까지 했다는 오만 인이자 영국인 할아버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할아버지는 헤매는 길 끝에 간혹 여행이 여행자에게 허락해주는 행운과 같았으므로. 생각 지도 못하게 바다가 보이는 작은 이층 집 '고래가 보이는 방'에 앉아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으므로.


향긋하면서도 귀한 예멘 커피를 홀짝거리며

친구에게 눈으로 이야기했다.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아.
헤매다 보니 이런 근사한 커피타임도 만났잖아.)

마치, 그 커피를 내가 사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여행에세이

#오만여행

#두바이에서오만국경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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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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