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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빛의 두 남자 사이

60대 친정 아부지와 6세 아들

by 김여희

두 남자의 양말을 신겨줬던 아침이었다.

이거 하나도 못 신느냐며,


속으로 퉁퉁거리며 신기던 양말 한 켤레.


시큰거리는 코를 눌러가며, 각각의 발가락이 제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해가며, 신기던 양말 한 켤레.


​왜 이거 하나 제대로 못 신는 거냐며,

반문할 새도 없이.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질 새도 없이.

그저 이를 악 물었다.






간호학 전공자 동생의 머릿속에서, 그럴싸한 의학용어를 찾아내고 페리주 계열의 영양수액을 이끌어내는 동안 문과 성향의 내 머릿속은

그저 과거로, 회귀할 뿐이었다.

고양이 세수를 귀여워하던,

매일 밤 엄마 몰래_ 장롱 안에서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주던,

대학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던,

국장님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던_


지금의 남편이 내게 줬던, 앞으로 줄 사랑보다

평생 너무도 많은 사랑을 줬던 사람을

되짚어가기에 바빴다.


"나 다시 돌아갈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빠는 아빠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나는?







두바이에서 전화를 받았던 그날도 생각했다.

집을 떠나간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런저런 말을 한 적 없던 엄마가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와." 말했던 날.


​꿈꾸는 나의 도시, 애정 했던 그곳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고민 없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던 날.


폐암 수술 후,

수척해진 모습의 아빠를 다시 만났다.





여러 날들을 훑고 또 훑는 동안

오늘 하루, 두 남자와는

내과와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내과에 다녀오자마자

한 남자는 홍시 하나를 입에 대 보지도 않고

잠에 들었다.


​문득, 나의 다른 남자가 생각이 났다.


외출하고 돌아와서 손을 씻자마자

압력밥솥 뚜껑을 열어

갓 지은 밥을 확인하고

숟가락으로 움푹 밥 한 술을 떠

작은 입으로 가져가는 나의 6세.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훌쩍 콧물도 났다.


​나는 요새 사뭇 다른 범주, 에너지의

두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분주하다.


아련하다가, 귀엽다가

안쓰럽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탓하는 마음이 일다가, 마냥 사랑이 깃들다가.


​근육이 사그라들어

얼마 없는 살들이 밀리듯 쭈글쭈글해진

60대 아빠의 마른 몸에

애가 타다


포동포동 살이 올라

6세의 보드라운 살들에, 안겨 위안을 받는다.






속사정은 복잡했을지언정,

일단, 운동도 다녀왔고 빨래를 돌리고 널었으며

두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외식까지 했다.


​그러다, 불현듯.


다시 수익을 낼 수 있는 날이 오려나.

당장은 아득하긴 하지만

늘 이렇게 구덩이만 파진 않을 테니.

또 언제 그랬나 싶게, 제자리로 돌아오겠지_싶고.


카카오 브런치의 몇 안 되는 글들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잊고 있던 남은 버터구이를 발견하곤 좋아하다, 맥주가 없다는 걸 알고

한 김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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