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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연 Apr 15. 2021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aka.불편한 진실)

욜쌤의 교실 에피소드 # 6

# 에피소드6-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aka.불편한 진실)                                                                                                                                                                                                                                                                                                                                                      

나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편이다. 나는 어떤 아이나 우리 반이 되면,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기를 원한다. 누구도 그 어떤 이유로 소외되거나 배척받지 않고, 또 그 모습 그대로 존중받길 원한다. 


교사인 나도 학급의 구성원이므로 나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또 나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끊임없이 존중과 인격적인 대우를 연습하고, 함께 성장해나간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아이들은 서로를 배려한다.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배움을 나눠줄 줄 알고, 갈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현명하게 풀어낼 줄 알고 선생님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며 존중할 줄 안다. 힘이 아닌 사랑의 논리가 통하는 교실. 




그러나, 이것만이 과연 진실일까 ㅎㅎㅎㅎ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가끔씩 그 행복을 와장창(?) 깨뜨리는 듯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한 선생님의 출산휴가로 기간제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교과 수업시간에, 내 앞에선 그렇게 배려쟁이 였던 아이들이 쌩난리를 쳤단다. 학급 회장단(회장, 부회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제대로 수업을 들으려한 아이는 아주 소수이고..아주 견판ㅋ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끔 너무할 정도로 솔직하다. 차별을 한다. 무서운 선생님과 친절한 선생님, 존중해야하는 선생님과 그렇지않아도 될 것 같은 선생님을 무섭도록 구별할 줄 안다.



그런 이야길 듣고나면 머리가 아프고, 내가 알던 이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지며 갑자기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해본다. 6학년 쯤 된 아이들은 부모님과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애착 관계가 좋아도 부모님이 모르는 자신의 세계를 대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세계를 가지는 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장려되어야 한다. 다만 아이가 그 세계를 부모님과 공유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면(꼭 공유할 필요도 없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일지라도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는 정말로 그것에 대해 하나도 모를 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어서, 민감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한 아이는 성숙한 인격체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6학년 쯤 된 아이는 부모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틀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가 학교에선 굉장히 활달해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늘 활발하고 명랑했지만 속으로는 친구관계에 우울해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이는 꼭 부모를 속이려고 하기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을 연습하고 자신이 어른이 되어감을 스스로 받아드리려 애 쓰고 고군분투 하는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면, 부모님들은 대개는 충격을 받게 되고..내가 왜 이렇게 아이를 몰랐나 우시는 경우도 많다.
경력이 짧았을 때는 부모님이 아이에게 소홀했던 게 아닐까 속으로 결론짓는 경우도 많았는데, 여러 번 고학년 담임을 하며 깨달은 사실은...




부모님이 정말 아이를 사랑하고, 민감하게 늘 살피고, 아이와 마음을 나눈다고 해도 사춘기의 아이의 세계를 다 아는 건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나이가 되면 부모도 아이를 잘 모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가 날 수 있게 아이를 좀 놓아야 한다. 때로는 그것이 숨쉬기 어려울만큼 불안하고, 힘들지라도.





M이라는 여학생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너무나 모범적인 아이였다. 조용조용하면서도 똑부러지고, 공부도 예체능도 잘하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M양은 6학년이 되며 학교에 아주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별 의심없이 학교에 일찍 가는 습관을 칭찬했다. 그런데 다른 반에서도 어떤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그와 비슷한 시간에 일찍 등교하는 일이 생겼다. 사정인즉슨, 남자아이 무리 몇 명과 M양은 방과 후는 학원 스케줄로 일정이 타이트하니 학교에 7시까지 도착해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밀회 아닌 밀회를 즐긴 것이다. 물론 엄청난 일이 행해진 건 아니었지만 M양을 모범생이자 남자에 관심없는 쑥맥으로 알고있던 부모님은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껴 한 동안 계속 우시며 상담을 했다.




M양은 부모님과 소통도 잘하고 부모님도 M양에게 관심도 많고 집에서도 늘 대화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동생을 알뜰살뜰 잘 챙겨 늘 고마운 딸이었다고 한다. 장난식으로 늘 관심없는 이성이 없냐는 걸 매번 물어봤지만, 물을 때 마다 M양은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그런 거 딱 질색이라며 딱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엄마인 자신에게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그렇지만..M양이 잘못한걸까? 부모님은 잘못한걸까?






숨을 고르고..좀 멀리 떨어져 상황을 보면, 이 것은 다 지나가는 과정이다. 아이가 어릴때와는 다르게 엄마와 모든걸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물어도 좋아하는 남자애를, 여자애를 숨길수도 있고, 좋아하는 티비/오락/유투브영상 등 엄마가 모르게 감쪽같이 자신의 세계를 혼자 만들고 있을 수 있다.




이 시기에 이걸 다 공유하고 전부 다 알지못한다고 애착이 실패하고, 부모로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아이는 건강하게 부모와 독립하고 있는 과정이다. 엄마가 전부였고, 표정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던 내 작은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지금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 애 쓰고 있다. 이 시기는 원래 이런 시기일 뿐이다. 나에게서 분리되려고 한다고 해서 그것을 지나치게 아파하고 슬퍼하면 아이는 엄마에게 독립할 수 없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가 엄마에게 모든 걸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와 사랑의 방법이 바뀐 것일 뿐.




그러나, 결국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와 좋은 관계를 맺은 아이는 건강한 독립 후 엄마에게 돌아온다. 결국은 다시 건강한 성인 자아의 만남이 되어, 더욱 끈끈하고 더욱 사려깊게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 이 시기는..그냥 그런걸로 알고 지나가면 된다. 지나치게 아이를 의심하고, 그 의도를 고민하고, 내 육아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아이가 날 사랑하는 그 마음까지 매도하지 말고..그냥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 시기를 잘 보낸 아이는 결국 얽매이지도 종속되지도 않는 건강한 성인이 되어 자신을 끝까지 믿고 지지해주고 늘 그 자리에 있어준 엄마에게 다시 돌아온다. 아기 때 부터 쌓아온 애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통합하는 힘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만 지금은 혼란의 시기임을 인정하고 가야한다.





다시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아이들이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께는 버릇없이 굴고 수업시간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를 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그 진심들을 가짜라고 무시해야할까? 그 마음은 다 가짜였고, 너희들은 기회주의자라며 욕이라도 해줘야하는걸까?



나도 지금은 그들의 부모님과 같은 입장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배려와 존중을 진심으로 자신들의 삶에 '통합할 수 있을 때'가 온다. 누구를 만나든, 앞 뒤가 다르지않게 행동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가 결국은 온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 앞에서의 행동과 내가 없을 때의 행동이 다르다고 해서, 이 아이들의 모든 것이 위선자인것은 아니다. 아직 서툴고, 통합시키지 못해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답은 이미 나왔다. 그냥 그 순간은 진심인 것으로 믿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 밖엔 없다. 엄마에게 자신의 세계를 숨기며 훌쩍자랐던 아이가 다시 내 곁에 자발적으로 와 주길 기다리는 엄마처럼..나도 매 순간을 진심으로 믿고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버려지는 것 같은 시간들을 지나 아이는 결국 성장한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낭비되는 것 같아도 하나도 낭비되지 않고 아이는 성장하고 성숙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믿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 것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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