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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중 Aug 20. 2020

처음 접하던 순간의 그리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주제로,

쇼펜하우어,


니체는 '도덕의 계보' 3 논문에서 쇼펜하우어라는 인물을 꽤나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연인지 최근에 쇼펜하우어를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접했기에, 도대체 그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에세이를 빌려서 읽고 있다.


이름만 들었을 땐 상당히 현대 철학자인 줄 알았는데, 괴테보다 약간 뒤에 시대 사람이었다니! 게다가 철학뿐 아니라 톨스토이, 니체, 프로이트 등 다양한 분야의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니! 도대체 그는 어떤 작가였을지 궁금함을 품고 책을 읽고 있다.



니체보다 훨씬 낫다,


 일단 쇼펜하우어는 글을 정말 잘 쓴다. 논리적으로 주장을 전개하면서도 예시와 흐름을 이어가는 글은 깔끔하면서도 꽉 차 있다. 특히 나는 니체 특유의 같은 말을 어렵게 풀어 적는 문체를 정말 싫어하는데, 정확히 그와 대조적인 문체가 마음에 든다.


내용에서도 니체의 모습이 보인다. 정확히는 니체에게서 쇼펜하우어의 모습이 보이는 거겠지만. 삶에의 의지나 귀족적인 태도, 고통과 예술에 대한 언급에서 유사성이 느껴졌다.


에세이에서는 그의 이전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자주 언급한다. 일단 책을 사놓긴 했는데 이름이 무시무시해서 걱정이다.



앞선 자의 사상을 따라가기,


무엇보다도 쇼펜하우어의 글이 내가 최근 고민하던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고 있다. 인간 삶의 동기, 고통, 자유, 무료함 등등. 그렇지만 그의 사유는 나보다 훨씬 깊고 더 나아갔기에, 읽는 게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이미 그가 답을 내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도 든다.


고전들을 읽다 보면,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나만의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오랜 역사 속 수많은 책들에는 분명 같은 현상을 보고 같은 사유가 담긴 것들이 많다. 어쩌면 책을 더 읽을수록 자신의 생각을 창조하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늘날을 보고 나만의 사유를 창조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베토벤을 처음 만났던 시절,


어제 피아니스트 임주희 씨의 글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야말로,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체험을 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라 적혀있었다.


벌써 7년 전쯤일 것이다. 학부 2학년 시절 학교에서 외부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연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다.


21번을 처음 듣던 순간, 그 쿵쿵거리는 시작에서 느꼈던 건 의아함이었다. 왜 이게 좋지? 눈 감고 딱 5분만 들어보았다. 음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걸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음악에 끌렸다. 그게 베토벤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는 것, 예술이든, 철학자든, 사람이든, 그 낯선 기간은 언제나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때론 익숙하게 느끼는 것들을 처음 접하던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러기에 혹시나 지금 그런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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