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져갈까?
보부상이었던 과거의 나를 소환!
교실에 꼭 한 명쯤은 그런 애가 있었다. 책가방에 온갖 아이템을 다 갖고 다니는 애. 테이프, 스테이플러, 손톱깎이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상. 우리는 이런 친구를 보부상이라 부른다. 그렇다, 우리 반 보부상은 바로 나였다.
내가 필요해서 갖고 다니기 시작한 물건들은 학년을 거듭할수록 점점 많아졌고, 고3이 되어서는 도라에몽 마냥 웬만한 잡동사니들이 가방에 다 들어 있었다. 성격상 남에게 빌리느니 그냥 내가 갖고 다니면서 언제든 쓰고 내가 빌려주는 게 마음이 편했더랬다. 이러한 과거의 경력을 살려 이번 여행 가방에 가져갈 물건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경력자답게 리스트가 매일매일 늘어났다.
(1) 상비약
마침 뚜가 비염 때문에 소아과를 다니던 때라 비상용 콧물 기침약을 지었다. 여기서 알아둘 것은 항생제는 증상에 맞게 처방해야 하기에 소아과에서 따로 지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생제가 필요할 정도로 아플 때는 현지 병원을 가는 걸 추천하셨다.
약국 상비약도 거의 약국을 털어올 기세로 배탈, 알레르기, 눈병 등등 종류별로 준비했다. 여행에서 치명적인 이벤트 중 하나가 아픈 것이기에 캐리어에 약이 차지하는 공간이 늘어나도 괜찮았다.(걱정 때문에 불어난 약은 여행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약이 무색할 정도로 아프면 언제든지 여행을 중단하고 집에 돌아오겠다는 마음도 함께 필요하다.
(2) 전기포트와 누룽지
성인들끼리 갔다면 굳이? 싶었을 아이템이지만 아이와 여행 갈 때는 필수였다. 뚜가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많이 먹지 못했을 때 숙소에서 컵라면이나 누룽지를 끓여주니 마음이 좀 놓였다. 현지 마트 어느 곳이나 우리나라 컵라면이 있어서 구하기 쉬웠고, 누룽지는 집에서 두 봉지를 챙겨갔던 걸 반 봉지만 남기고 다 먹었다. 다소 무겁고 부피가 좀 있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3) 샤워기 필터
사실 필터뿐만 아니라 샤워기까지 챙겨 갔다. 이 또한 한 달치를 준비하려니 부피나 가격이 꽤 나가서 고민했지만 샤워 한 번에 필터가 누레지는 걸 보며 들고 온 나 자신을 칭찬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나니 앞으로도 모든 여행엔 필터를 챙겨 다닐 것 같다. 보통 필터는 길쭉한 형태인데 부피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여행용으로 나온 작은 사이즈를 가져갔다.
(4) 가위와 과도, 수저
동남아는 맛있는 과일이 가득하다. 특히 망고! 나는 이번에 질리도록 먹고 오겠다는 작은 목표가 있을 정도로 망고에 진심이었다. 숙소에서 분명 먹을 일이 많을 것 같았기에 언제든 썰어먹을 준비를 해갔다. 덕분에 밤마다 둘이 편하게 망고 파티를 벌였다.
(5) 휴대용 장바구니
다ㅇ소에 가면 천 원짜리 접이식 장바구니가 있다. 납작하고 가벼워서 크로스백에 하나 넣어놓고 다니다가 낮에 관광하며 늘어나는 잡다한 짐을 넣어 다니기 편했다. 특히 기념품을 사거나 저녁에 마트에서 먹거리를 살 때 아주 잘 사용했다.
(6) 빨랫줄
다ㅇ소에 캠핑용 빨랫줄이 있다. 양쪽에 흡착 걸이가 달려있어서 숙소 창문이나 거울에 붙일 수 있다. 수영복 등으로 빨래가 많아져서 숙소에 있는 옷걸이로도 부족할 때, 여기에 널어 말리니 공간 활용에 좋았다.
(7) 멀티어댑터
필수 중에 필수. 콘센트 모양이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전기포트, 휴대폰 충전기 등을 꽂으려면 꼭 필요하다. 쿠ㅍ에서 전 세계 대부분의 플러그에 가능한 멀티어댑터를 사서 가져갔다.
(8) 없어도 되지만 있으니 좋았던 것들
싱가포르에서 슈퍼트리쇼를 볼 때 바닥에 깔 일회용 테이블 비닐, 여분의 비닐봉지, 빨랫비누, 코인티슈, 접이식 부채, 스포츠타월, 소매치기 방지용 자물쇠, 낮에 관광용으로 맬 크로스백과 배낭
이밖에도 기본적이라 자세히 적지 않은 세면도구, 화장품, 옷, 수저통, 수영복, 샌들, 양우산 등... 짐이 계속 불어났다. 이걸 모두 어떻게 가져가면 좋을까? 처음엔 캐리어를 두 개 가져가려고 했지만, 한 손은 아이 손을 잡아야 하기에 고민하다가 캐리어 하나와 배낭여행용 가방을 메기로 했다. 또 기내에서 쓸 공기 주입 목베개와 칫솔, 얇은 카디건 등을 넣은 보조 가방도 하나 챙겼다.
아이와 비행 시 기내용 가방에 넣어야 할 것
비행 중 아이가 갑자기 열이 오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체온계와 아이가 평소에 먹던 해열제를 가지고 타면 비상시에 유용하다.
이렇게 준비한 물건들을 캐리어와 배낭에 각각 21kg가 넘지 않도록 테트리스 하듯 맞춰 넣었다. 무겁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못 들 무게도 아니었다.
그렇게 출발 당일 짐을 챙긴 나는 배낭여행과 호캉스 중간 어디쯤 되는 모습이었다.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동네 친구를 만났는데, 내 모습을 보고 생각과 달라 조금 놀랐단다. 난 맨 얼굴에 편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그렇다. 아이와 둘이 가는 여행? 사실 육아의 확장 버전이다. 그러니 내 모습이 어떻든 상관없다.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니까. 나는 오로지 안전과 보호, 재미 이 셋에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