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사들조차도
현재 엄마의 상태에 대해 어렵다고 한다.
그래. 물론 어렵겠지.
계속 눕고 싶어 하는 엄마의 멱살을 잡고
꾸역꾸역 세상 안으로 밀어 넣는 것만큼 어려울까.
우리 아들,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야지.
(긴팔을 입었더니) 옷이 별로 없나 보네.
언제 왔길래 벌써 가는 거야, 등과 같은
습관적 헛소리를 들으며 이 꽉 깨물고
웃음으로 넘기는 것만큼 어려울까.
소세포폐암이고 나발이고 병명일 뿐이고
러시아워에 맞춰 엄마를 데리러 가고
현기증 나는 특유의 병원 냄새를
매일 맡는 것도 이제는 힘들지 않다.
가장 힘든 것은 마주하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반가운 아들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프고 아픈 엄마 얼굴이다.
얼마나 살고 싶으신 건지
얼마나 사실 건지 농담 삼아
넌지시 물어보고 싶지만
밤마다 비수가 되어 내게 돌아올까 봐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다.
방사선을 통해 썩어가던 뇌가
조금씩 고쳐지고 있다.
나름 걸음걸이가 괜찮아지셨다.
말투도 제법 또박또박 해지셨다.
뇌는 정말 중요한 기관이란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나날들.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고작 하루 10분 남짓이었던,
2주간의 방사선 여행의 끝
신세는 지지 않거나 꼭 갚는다 라는
생활신조 아래,
늦은 효도라는 부끄러운 이름 아래,
엄마에게 받은 그 어떠한 것의
그 반의 반만큼이라도 돌려줘야 한다.
병원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며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혼자 중얼중얼 거린다.
내가 더 힘을 내야지.
마주하기 힘든 것 중 가장 제일은 사람이다.
사랑한 만큼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