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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티바람 Jul 29. 2024

눈 떠 보니 보호자

항암치료 걸음마 중

엄마는 '소세포폐암'이라는,  

나는 '보호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늘 초조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심장은 제멋대로 5분 대기조처럼

뛰쳐나갈 기세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나를 둘러싼 것들의

의미를 순간순간 정리하고 있다.


망설임, 시선, 시간, 기록, 배려, 관계, 포기,

부탁, 선물, 감사, 공간, 수면, 죽음, 꽃, 희망,

노력, 헌신, 진심, 핏줄, 타인, 계획, 신, 길,

너, 나, 우리, 그들, 혼자 등등


의미와 의미의 의미다.


무거운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같이 들어주는 것과

해체를 도와주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일까?


첫 항암을 간신히 받았다.

병실도 어렵사리 구하고

환자도 많아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선행치료인 방사선 효과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으나

슬슬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머문 자리에는

가여운 머리카락이 박혀있었다.


집에 가서 쉬고 내일 회사 가서

일 잘하라는 엄마의 힘겨운 마중을 받으며

발걸음을 간신히 떼었다.


늘 그랬듯이 분명 긴장이 풀어지지 않아

새벽에 깰 것이다.

요 며칠간 그렇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하릴없이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푹 자고,

머릿속 스위치를 끌 수 있을까

아니, 스위치를 꺼도 괜찮은 걸까.


다시 집에서라도 맨몸운동을 해본다.


너무 많은 생각이 모래바람처럼

눈을 어지럽힌다. 소세포폐암이라...

하루종일 눈곱을 떼느라 정신이 없다.


기수로 따지면 몇 그 정도 되나요?라고

몰래 의사 선생님한테 물었을 때

4기라고 대답을 듣고 무너졌던 하루는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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