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도 드디어 항암치료로 덕택에
대머리가 돼 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가발을 사야겠다고 했고
나는 집 안 곳곳 뭉텅뭉텅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모아 가지런히 버렸다.
엄마, 골롬같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반지의 제왕을 좋아하는
정신 나간 모자의 대화이다.
암환자의 보호자 중 80%는
고도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간 내게 감사히 주어진
과분한 스트레스에 익숙해져
생각보다 폐암환자 보호자 코스프레는 할만하다.
좋은 점도 있다.
숨 가쁘게 추락하는 내 삶 주변을
느리게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눈을 감고 느리게 과거를 훑다 잠든다.
엄마 병원만 오가다가 오랜만에 짬이 나서
약도 탈 겸 나를 위한 진료도 받았다.
선생님의 한숨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생각을 비우면 더 많은 생각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 마음이 과했던 걸까.
바람에 창문이 삐걱거린다.
내 옆에서는 선풍기가 자연풍으로
쥐락펴락 조용히 바람을 내뿜는다.
문득 이제 엄마는 바람에 날릴 만한 것이
몸뚱이 하나뿐 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티비를 틀고 OTT를 연결한다.
유일하게 챙겨보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켠다.
티비 속에서 근엄하게 읊조리는 이정재의 대사를
티비에 간간히 비친 내 모습에 뱉어본다.
I believe in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