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미어스 <미드웨이>

by 별이언니

착함에 실패해 비행기가 부서지고 조종사가 물에 빠져서 흘러가는 상황, 야간 공습에 정신없이 팬티 바람으로 도망가면서 폭탄이 떨어지는 한가운데 막사에서 아직도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사를 보는 마음, 어제의 전우가 실종되거나 전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점점 마음 속에는 객관적인 공습 목표와 승리에의 다짐만 오롯하게 살아남는 일을 마주하는 것.

폭탄에 털 한올도 남지 않고 새까맣게 그을려 죽은 전우들을 보면서 기이한 형태의 청동상을 떠올리거나 가라앉는 대대장의 뇌격기를 바라보며 거기 실린 월급 명세서를 걱정하는 일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전쟁터에 있다고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어느 부분은 스스로 문질러 지워버려야 할 수도 있다.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을 성공한 후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었다. 그토록 열망하던 유럽전선에 발을 디뎠다. (왜 루즈벨트는 온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을까. 그건 그가 바라던 어떤 정의였을까.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생각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불편한 마음으로 부르는 '세계의 경찰' 이미지가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부가 부족해서 막연한 짐작 뿐이다.) 그리고 미 해군은 기세 등등하게 태평양을 점령하려고 하는 일본 해군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고 느꼈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 해군의 쇠망을 부르는 방아쇠 역할을 한 전투였다. 프레더릭 미어스는 이 해전에 참가해 공습을 했던 조종사다. 미드웨이 해전부터 1년간 그의 시간에는 숱한 죽음과 기약없는 실종, 부상, 난파, 폭격이 있었지만 가끔 나오는 특식과 즐거운 별명으로 서로 부르는 전우들과의 카드놀이, 귀한 술 한 병을 들고 바라보는 남태평양의 저녁놀도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안된다는 징크스에 출격 전 망설이자 승무원이 선듯 자기 장갑을 빌려주었으나 그의 전투기는 피격당하고 장갑을 빌려준 승무원은 재기불능의 부상을 입고 만다. 더이상 날 수 없는 동체에서 탈출한 동료는 겨우 오일치 물을 가지고 승무원 한 명과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면서 매번 섬찟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저 칼로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기지로 돌아왔다. 이렇게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출격하여 방향을 잘못 잡고 하늘과 바다 그 어느 사이로 영영 사라져버린 전우들도 있다. 막사에서 자다가 폭격으로 죽어버린 전우도 있다. 다소 딱딱하고 거칠게 쓴 이 회고록이 매력적인 것은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르는 죽음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이어지고 윤활유처럼 유머가 있다는 점이다. 국립묘지의 비석을 하나하나 물로 닦고 참배하는 것처럼 비극적인 어투로만 이어졌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결코 점잖지 않았고 동양인(특히 적군인 일본인)을 혐오했고 끝없이 여자를 생각했고 일탈과 지저분한 농담도 이어갔지만 그 전장에선 살아남았다. (프레더릭 미어스는 2차 대전 일본의 항복선언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미드웨이와 이후 과달카날에서는 살아남았지만 그가 날았던 어느 하늘에서는 운이 좋지 않았다.) 저격수가 있는 것 같다는 속삭임에 속옷 바람에 권총을 움켜쥐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리는 밤이 있는가 하면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 항구 근처 술집에서 휘파람을 불며 맥주를 마시는 밤도 있다. 어떤 비극 속에서도 밥을 짓고 사랑을 나누고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꽃을 사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친구와 농담을 하는 시간이 있다. 우리의 아무 것도 아닌 삶은 그렇게 소중하게 빛난다.

이 전염병의 시간을 혹자는 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류의 방자함이 쏘아올린-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과의 전쟁. 겨우 일년 남짓한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총성도, 비명도, 파괴되는 건물도 없지만 사람들은 죽어간다. 실감나지 않는 죽음이다. 적어도 바로 옆에서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시체를 목격하는 일상은 아니니. 만져지지 않는 죽음과 함께 살면서 우리도 어떻게든 일상을 이어간다. 비록 마스크를 써서 한눈에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거리에서 서로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연인들은 데이트를 하고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서 잠투정을 한다. 새로 아이가 잉태되고 계절이 바뀌면 나무의 색들도 바뀌고 먼 나라의 소식을 휴대전화로 검색하면서 막연한 걱정을 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죽음은 도처에 있고 그 틈으로 우리의 삶도 이어진다. 돌틈을 흐르는 물줄기를 붙잡고 어린 꽃이 피어나듯이.

그것이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다. 덧없기에 더없는 순간이다.

이 시간도 지나간다. 이 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테고, 회한과 고통을 흉터처럼 품고 살아가는 이도 있을테다. 누군가 이 시간을 기록해 먼 훗날 인간의 자손이 살아있다면 그것을 더듬어 읽고 마음을 보내는 일도 있을테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산다. 죽음이 있어서 삶은 찬란하다. 등화관제를 어기고 장사를 하는 술집의 불빛이 꽃이 피운 구름처럼 청춘을 불러 품에 안고 흔든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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