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만 산문집 <가만히 두는 아름다움>

by 별이언니

술 몇 잔을 마시며 읽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차나 물만 마시는 편인데, 아주 가끔 다른 것이 당길 때가 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을 까먹으며 읽은 시집도 있고, 매운 과자를 먹으면서 읽은 소설도 있다. 그리고 이 산문집, 중간쯤 읽다가 접어두고 술을 찾으러 갔다.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술을 입에 머금었다가 한 문단이 끝나면 삼키고 다시 잔을 들어 머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법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자 눈이 내리는 숲을 흘깃 건너다보는 눈길, 그 눈길의 끝에 가만히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떤 글은 사람의 영혼이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그것이 정갈하든 더럽든, 슬프든 성급하든, 영혼이 보이는 글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데, 피츠제럴드의 작품에는 삼류 극장의 대기실에서 젊고 뾰루퉁한 여배우가 얼굴에 바르는 분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장해 내세우지도 않는 품성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작가로서의 타고난 품격과도 같다. 아름다움을 가만히 두는 마음 또한 그렇다.


나는 어린 소년이 어두운 낯빛으로 마루 끝에 앉아있는 것을 바라본다. 그의 등을 적시고 마당까지 쏟아진 방의 불빛, 가족들의 수런거림.... 사랑과 미움으로 복잡한 마음은 빛과 어둠이 만나는 언저리가 채 담장까지 닿지 못하고 아이의 동그란 발그림자만 마당 가운데로 데려와 머무는 일과 닮았다. 저 대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그렇게도 어렵고 그렇게도 쉬웠다. 오래 도시의 언저리를 식구들과 떠돌았지만 언제나 고향은 거기 있다. 가족은 거기 있다. 일찍 세상을 버린 막내 여동생도 있다. 하지만 돌아가도 마음은 둥둥 떠 있다. 지금 여기 누군들 고향이 편할 수 있나. 우리는 떠돌이로 산다.


이 떠도는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고 목마를 태워도 거뜬하던 아이들을 양팔로 안아 들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사람이 사는 일이 지나간다. 그 일 곁에 늘 머무르는 것은 지극한 눈길. 저 어둠으로 나아가지 않고 빛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어디 엎드려 있는지 모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 이 산문들은 그런 지극함으로 써내려갔다. 좋은 글은 읽는 이를 쓰는 이의 생활, 그 글이 쓰인 어느 풍경으로 데려가 그 환하고 어두운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빛부심 때문일까, 술기운 탓일까. 나는 종종 울컥했다.


아름다움이 거기 가만히 머물 수 있도록 두는 마음이 너무 고와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발을 멈추고 이마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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