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숙 소설집 <아이젠>

by 별이언니

욕조 가득 락스를 푼 물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잠기고 싶어, 살균되고 싶고, 살충되고 싶어......


그러다 사라지고 싶다. 그 사라짐에 대한 열망은 뼈 밖에 남지 않은 몸조차 무겁게 만들어 바람이 쉽게 들락날락하는 허술한 구조물이 된다. 살짝 스친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날 정도로 마르고 추운 몸이 된다.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 물 한 잔으로 연명해도 참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몸. 그 안에 든 것은 무엇일까. 허무, 외로움, 공포? 알 수 없는 것들이 끌탕을 치는 몸은 풍선을 닮아가는데 역설적이게도 떠오르지 않는다. 영원히 반복되는 골목과 여관, 몇 층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계단을 무겁게 기어올라 탄성이 흘러나오는 방문 앞에서 클, 클 거칠게 웃는다. 허하다는 것을 모르면서 끝없이 음식을 밀어넣고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역시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고 싶지만 사라지지 않는 몸, 그건 세상에 나를 묶어둔 닻과 같다.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매듭을 풀려고 저항하는 것조차 피곤하다. 그러니 사라짐을 꿈꾸며 천천히 몸을 마모시킨다. 그걸 견딤이라고 그녀들은 부른다. 그리고 그녀들이 어리석다고 욕하는 남자들은 그녀들을 제대로 만져주지도 않으면서 계속 이건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장한테 얻어터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거친 말투로 매일 보복을 맹세하면서, 곧 닥쳐올 삶의 환희를 계속 말한다. 그녀들의 깡마른, 염소를 닮은, 긁어서 피딱지가 앉은, 뚱뚱한, 아기 손바닥 반만한 귀에 대고 소리친다. 이건 삶이 아니야, 이렇게 살면 안돼, 나는 곧 부자가 될거야, 사장을 죽이고, 화려한 단상에 올라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거야, 너도 내 이야기에 들어오게 허락해줄께, 까맣고 작은 장식장이 되는건 어때? 데뷔로는 그만이야...


그도 그럴게, 그렇게라도 프레임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걸.


프레임 밖, 가느다란 팔다리가 대롱대롱 몸에 매달린 만삭의 예지가 멍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지나가고 있다. 그것이 정답이라는 듯.


이 골목을 떠날 수 없다. 그녀들은 너무 피곤해서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왜 그녀들은 계속 쓰레기통 뒤에 숨어서 아름다운 가죽을 염탐하는가, 무허가 밭에 매인 염소들에게 포슬포슬하게 찐 감자를 가져다 주는가.


그녀들은 계속해서 자라나는 갈망을 살충하고 살균하고 싶다. 피와 진물이 흐르는 몸일지라도 그녀들은 결벽의 끝판왕이다. 이상한 소설을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어서, 재미없는 노인들의 마을에서 떠날 수가 없어서.


몸이 사라지거나 펑 터져 축제의 팡파레가 울리지 않는 것처럼 그녀들의 마음엔 계속 버섯이 자랄 것이다.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전봇대 뒤에서, 부재중 전화로 계속 맴도는 남자들과 달리,


그녀들은 계속 이상한 소설을 쓰고 얼굴이 터져라 웃고 이 골목과 계단과 골방과 둔덕을 걸어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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