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누구나 자신의 분신을 원하는 것 아닐까. 그걸 찾지 못해서 모두들 고독한 것은 아닐까.”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일을 쉬면서 아팠던 손은 많이 좋아졌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에 온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손가락을 앓으며 알게 되었다. 캄캄한 밤에 잠에서 깨면 멍하니 생각한다. 내가 잠겨있는 이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나의 장기, 핏방울, 혈관, 뼈, 관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나 분명 거기 있을 감정들, 빛나는 거품으로 일어나는 영혼의 일들.
나는 유일하다. 이런 인식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선 엇비슷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모두가 다르고 달라서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희미하게 닮았다. 나는 인간을 유전자 레벨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다르면서도 닮은 인간을 가끔 사유한다. 뿌리가 하나인 거대한 나무, 어쩌면 세계수라고 부를 수 있는 생명의 계통으로 생각하자면 결국 모든 생명은 피의 어스름에서 걸어 나온 가족이 아닐까.
그러나 후타바와 마리코의 장을 읽으며 그녀들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도, 사랑했던 부모가 사실 부모가 아니라는 것도, 존경했던 아버지가 사랑한 여인의 복제품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는 것도. 절망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아키코의 증오도 납득할 수 있었다. 유순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건너온 시간 너머에서 젊은 날의 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악몽이라니. 아키코의 변명은 그녀조차 알 수 없는 혼동 속에서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불쾌와 증오도 있겠지만 그녀는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녀들 셋의 dna는 같을지 모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달랐다. 아키코는 커튼 뒤에 숨는 일을 택했다. 커튼 뒤에 숨어서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없었던 것으로 되길 바랐다. 마리코는 주저앉았다. 스스로를 실험용 동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뭉개진 자아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의식 깊숙한 곳의 마리코는 구원을 바랐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화장실로 달려가 소변을 보거나 예정일도 아닌데 생리가 시작되어 실험이 늦어지면서 그녀는 구원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두 번째는 아버지의 참회로 그녀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후타바는? 후타바는 그녀를 연모하는 남자의 도움을 뿌리치고 직접 핸들을 잡는 선택을 했다. 그 아이를 구해야지, 아니 그 아이를 만나야 해. 후타바는 분신을 꺼림칙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도와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마리코라고.
후타바와 마리코는 만났다. 동틀 녘의 라벤더 밭에서. 그녀들의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른다. 평탄하지 않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만났으므로,
안녕. 마리코가 인사하고.
안녕. 후타바가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