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by 별이언니

삼십오 년째 그는 지하실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한다. 책의 무덤. 세상을 다 돌고 소용을 다했다고 여겨져 피에 젖고 오물에 젖은채 함부로 묶여 던져지는 책들. 그는 폐지속에서 책을 찾아 아름다운 꾸러미를 만든다. 아름다운? 그의 꾸러미들은 축축하고 쥐가 마구 돌아다니는 지하실 여기저기에 숨겨져 찬란하게 썩고 있다. 맥주 몇 단지를 마셔야 겨우 일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그는 그의 파괴활동을 사랑한다. 생쥐를 압착하고 파리를 압착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고 건물은 무너지고 사람은 죽고 칭송받던 여자는 치욕으로 성장해 천사상에 자기의 얼굴을 얹는다. 그? 늙은 폐지압착공은 녹색 버튼을 누르고 붉은색 버튼을 누른다. 폐지를 줍는 집시여인들이 까르륵거리며 그의 지하실을 찾아와 폐지 더미 위에 누워 치마를 걷어올린다. 그의 집시여인은 수용소에서 죽었다. 오로지 불을 피우기 위해서 그의 집을 찾던 여인. 그와 그녀는 연을 날렸다. 언덕에서. 이름도 모르고 사랑했던? 사랑했던! 사랑했던, 여인.

그는 그의 압축기를 사랑해 은퇴를 하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만의 보물찾기를 할 셈이다. 선로에서 일했던 외삼촌이 집의 정원에 작은 선로를 깔고 신호교환기를 작동하며 신나게 달리듯이. 평생 해온 일을 반복하면서 놀이에 빠져 주변을 잊는 늙은이들이 왁자지껄한 외삼촌네 정원의 풍경.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따뜻했던 문장들.

압축기는 책을 세상에서 장사지낸다. 그가 외삼촌의 녹아버린 몸을 삽으로 긁어모았듯. 그러고보면 그는 장의사로구나. 가장 정중한 방식으로 관뚜껑을 덮는 자로구나. 그러니 그의 손은 포도나무 덩굴처럼 거칠고 그의 영혼은 몇 리터의 맥주를 마셔도 몽롱해질 겨를이 없구나.

그렇게 그는 그의 시끄러운 고독과 더불어 삼십오 년을 하루처럼, 매일 한 줄의 문장을 구하며 살았다. 그의 늙은 기계 스무 대 노릇을 톡톡히 하는 도시의 거대한 압축기와 흰 팔뚝을 드러내고 우유와 콜라를 마시며 의심없이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을 만나기 전까지. 이 영민한 지하생활자는 이제 안다. 그는 백지의 세계로 추방당할 운명임을. 손때가 묻다 못해 사람의 혈흔까지 이고 와 무거운 몸을 부리던 폐지에서 쫓겨나.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그의 묘비명임을. 이제 사람들은 이 더러운 책들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찾아보지' 않을 것이고, 간단히 버튼을 눌러 사라져야 할 것들은 의심없이 뭉개버릴 것이다. 차라리 비명과 절규속에 보란듯이 책을 태워 없애던 고대의 분서갱유가 인간적이지 않은가. 아 참, 그때의 하늘은 어쩌면 조금은 더 인간적이었을지도.

그러니 그는 책 한권과 함께 압축기 속으로 은퇴할 운명이다. 이렇게 고집스럽고 이렇게 순정한 사람이 다른 길을 찾을 방도가 없으니.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평생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동을 전전했고 어느날 병원 입원실에 찾아온 비둘기에게 먹을 것을 건네기 위해 창을 열고 몸을 내밀어 추락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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