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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Nov 27. 2023

23.11.27

지나다가 들른 갤러리에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걸려 있었다.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그린 레플리카를 전시하는 갤러리라고 했다. 정식 개관은 아직 몇 주 남았지만 편하게 둘러보라고 배려해 주신 덕에 어색하게 돌아다니다가 보았다. 황금빛이 가득한 그림들 가운데 걸려 있는 이 그림을. 내가 한때 정말 좋아했던 그림을.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시를 썼다. 아무리 다듬어도 작품이 되지 않아 묻어두었지만 그 많은 습작들 중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살아있는 시. 이 행 사 연으로 이루어진 시에는 메마른 땅과 가시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재앙의 땅에 여름이 들면 대지의 잔뼈가 튀어나와 사람이 되어 걸어 다닌다고. 그때의 나는 연애시를 써도 물에 빠뜨리는 사람이었다.

왜 작품이 되지 않았는지 다시 그림을 보며 알았다. 그림을 옮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미숙하여 그림에 홀린 마음을 언어로 눌러앉히려고만 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시에는 나의 바라봄이 없었다. 들뜬 이미지만이 가득했다.

왜 잊지 못하는지 다시 그림을 보며 알았다. 나는 결국 이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을. 나의 정서는 저 검은 손과 흰 감자 사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계속 실패하겠지만 계속 쓰고 다듬고 다시 지우며 언젠가는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세상에 내놓을지도.

고흐의 그림은 편지가 공개되면서 비로소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흐는 테오에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집요하게 편지로 보냈는데 그의 기구한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지며 그림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좀 쓸쓸하지. 무구한 감각이 연결되어 태어나는 수많은 감정들보다 결국은 정답을 찾게 되니까.

그림 앞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하루를 보내는 감상자를 발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하고 오래 이끌리고 이윽고 떠난 자리를 보고 싶다고. 체온이 식어가는 자리에 머무는 공기와 빛을 기록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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