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흐린 날이 좋아. 젊은 엄마는 어린 나에게 말했다. 어린 나는 목을 움츠리고 구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통이 몰려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햇빛의 추종자였다. 어릴 때는 티 없이 환한 날을, 젊을 때는 표백제에 담근 듯 무서운 한낮을, 그리고 지금은 저무는 빛을 바라보기 위해
나는 늘 맑은 날을 좋아했다.
따뜻한 겨울의 흐린 날. 책을 읽으려면 방에 불을 켜야 한다. 이런 날은 몸이 무겁다. 쨍하게 추운 겨울 하늘은 새파래야 좋다.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이렇게 흐리고 따뜻한 날은 반드시 무언가 상한다. 다정하니까. 햇빛의 무시무시한 폭력이 없으니까.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잠들렴. 눈꺼풀을 쓸어내리며 무거운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과 닮았으니까.
맑은 날은 말이야, 불안해. 젊은 엄마는 표정 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천연덕스럽게 폭로하는 햇빛, 광포한 햇빛. 지금 엄마는 맑은 날을 좋아하신다. 강아지들과 산책할 수 있으니까. 나이 든 나는 여전히 맑은 날을 사랑한다. 천천히 기울고 고요히 가라앉아 이윽고 사라지는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보여줘. 찬란한 것들이 어떻게 파묻히는지. 선명한 것들이 어떻게 지워지는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고 있는 희고 매끄러운 것에 표정이 돋아나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