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Changeling
라캉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기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아기는 자신이 엄마와 하나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태내에서 찰랑거리는 양수에 에워싸여 포근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되는 자궁의 꿈.
자아와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이 시기에 아기에게 남아 있는 감각은 편안하다, 아니 불편하다, 정도의 육체가 주는 신호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 시력이 생겨서 거울 같은 것을 통해 반사되는 자신을 보고 비로서 아, 나로구나, 하며 깨달음의 파편을 얻는다.
그럼 부모는? 아기는 성장하면서 자궁으로부터 분리되어 미숙하게나마 자아를 인지하고 다시 자신과 엄마 외의 세계를 만지고 맛보며 뒤뚱뒤뚱 걸어나간다. 그럼 부모는?
과연 아기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 아기를 독립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 하염없는 뒤뚱거림을 격려하는 성숙한 부모가 되는 일은 과연 쉬운가?
트롤로부터 브라이언 카그와를 찾는 여정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아기를 사랑하는 법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좋은 아빠가 되는 일, 좋은 엄마가 되는 일. C 트레인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며 아기를 낳는 일. 아기는 벅찬 감정으로부터 걸어나와 밀로의 비너스처럼 파도의 흔적을 걷어내며 우리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오, 이 사랑스러운 나의 피조물. 손안에 쏙 들어오는 휴대전화는 언제 어디서나 아기를 영상과 사진으로 전세계에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이미지에 전세계가 홀린다. 그리고 트롤도 홀린다.
마법이 그의 눈을 가렸다 하더라도 트롤이 못생겼다며 버린 아기를 자신의 아기로 간단히 착각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뜨거운 욕조에 담궈 죽이려고 한 아버지에게 가족서사의 달콤한 꿈을 씌워 평생 그리워하는 것처럼. 눈앞에 있는 아기 그 자체에 몰두하기보다는 좋은 아빠가 되는 일에 몰두한다. 그것이 잘못인가. 그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당당한가.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숨겨둔 아픔을 투영하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살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트롤은 자신의 아기가 혐오스러워 사랑스럽고 예쁜 인간의 아기와 바꿔치기하고, 좋은 부모로 살고 싶어서 아기를 잘 키워보려고 하지만 - 아기는 언제나 잘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거나 강제로 분리되어버린 자궁을 찾아 서럽게 운다. 그러면 트롤은 아기를 들어올려 삼켜버린다. 이번의 시도도 실패였어. 다시 아기를 데려오자. 이번에야말로 좋은 부모가 되겠어. 이번에야말로 자랑스런 가족을 이루겠어.
트롤의 배를 가르고 다시 세상에 태어난 브라이언 카그와. 트롤의 자궁으로부터 되돌아온 아기. 하지만 아폴로는 아기와 아내를 끌어안고 꿈꾼다. 그들이 살아갈 성장서사를. 극적으로 되찾은 아기에 애착하지 않고 그들은 가족놀이를 멈출 수 있을까. 단 한가지 위안은 그들은 감히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오늘, 딱 오늘 행복' 하기를 바란다는 것.
Q11은 그들을 외면과 두려움과 폭력과 살해로 얼룩진 그들의 집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아폴로, 에마, 브라이언 카그와 - 그들의 오늘이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