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 굴리, 나무를 읽는 법

by 별이언니

이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 종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느 날 인간이 사라진다고 하자. 두어 달 정도면 인간이 만든 것들은 폐허가 된다. 인간이 세운 벽을 뚫고 지붕을 무너뜨리며 잎사귀가 피어나고 뿌리가 자란다. 이 행성을 표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종은 호모 사피엔스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모든 생물종을 멸절시키지 않는다면 이 행성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나무다.


인간은 인간의 마을에 다른 것들은 없다고 흔히 착각한다. 이중 삼중으로 견고하게 세운 건물과 누르고 다져서 안전해 보이는 도로 위에서 인간은 인공 유토피아를 누리고 있다고. 거만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인간의 얼굴 위로 나무는 검은 손자국을 남긴다. 한 줌의 그늘을 떨어뜨린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싫증 나지 않고 나무를 바라보는 작가라면 방향을 찾아 돌아 나올 길을 찾을 텐데. 나는 나무의 옹이도, 휘어짐도, 햇빛에 덴 상처도, 습기를 피하는 결도 모르니 꼼짝없이 나무에 삼켜지겠구나, 하며 조금은 두려웠다. 뭐든지 인간을 들씌우는 고약한 습성 때문에 나무를 바라보며 내가 사용했던 언어들도 반성했다. 나무는 생명일 뿐이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메커니즘을 이룬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무의 겉모습도, 수피 아래의 구성도, 큰 나무 아래 수없이 죽어가는 작은 나무들도, 살기 위해 가차 없이 버리는 가지들도, 나무의 무늬 하나하나가 살아감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나무 앞에 서서 나의 정서를 노래했다. 모르는 자의 폭력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솔직히 모르겠다. 나무가 무엇인지. 하지만 적어도 나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길어질 것 같다. 색, 빛, 냄새 같은 단순한 스침이 아닌 조금은 느긋하고 아주 약간 더 섬세한 관찰을 하려고 노력할 것 같다. 쉽게 휘어지는 마음인지라 또 나무에 나의 정서를 얹고 의탁하겠지만 폭력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할 것 같다. 그렇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지하고 일방적인 다가감이 아니라 조금 거리를 두고 느리더라고 실체를 담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이 행성의 파괴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로서.


올봄에는 마음의 표지판이 될 나무들을 찾아야겠다. 지하철역 이름이나 커다란 건물 이름이 아니라 "돌담 옆 커다란 목련나무에서 만나요"라는 약속을 해야지. 계절이 달라지면 또 다른 나무들을 찾아서. 나무 옆에 서서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와 오래 시간을 보내게. 살기 위해 가지를 버리는 나무의 그늘이 나를 덮으면 나도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 있던 감정들을 조용히 떠나보내야겠다. 나무는 그저 살아가고,


그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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