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미끄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늘.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릴 땐 아무래도 다리 힘이 지금보다는 좋아서
계속 미끄러지는 삶을 비틀거리며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폐허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나고 다 무너졌을 때 비로소 거기 있던 것들의 궤적을 상상하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의 폐허는 아직 무언가 남아 있어 지붕과 벽과 다락과 침대, 둘러앉은 식탁 위 그릇과 수저, 반들반들한 뒤통수를 연상할 수 있는 자취였다. 폐허도 오래되면 그저 숲이 되거나 사막이 된다. 빗방울이 모여서 바다가 될지도. 그러면 막막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그렇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울 때 꼭 책이 왔다. 아직은 아니라는 듯, 가만히 집 앞에 웅크리고 기다리던 책. 소포 봉지를 뜯으니 스노클링 장비를 야무지게 착용한 검은 강아지가 우유 항아리 같은 단지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책 제목을 확인하고는 현관에 한참 앉아있었다. 뭐 어때. 꼭 나한테 해주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 책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 2025년 4월까지의 기록이다. 모두가 조금씩 더 무력해지기 시작했던 병. 빠르게 바뀌는 이 세상에선 전생의 돌림병처럼도 여겨지는. 고민하고 망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내가 침대 속으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던 날들에. 기억하며 기약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고 미끄러지는 삶에서 알 수 없는 문장들을 길어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용기를 만났다. 부끄러웠다.
폐허가 수몰되었다면 바다 위 파도의 포말을 읽으며 나는 처음 쓰는 문장을 만날지도. 저 끝도 없는 푸름 속으로 하나씩 나의 문장을 빠뜨리면 사라진 마을의 궤적이 보일지도. 나는 무력하고 느린 문장을 다시 써야만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끄럼 없이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