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별이언니

책을 읽으며 아주 조금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심지어 죽어 육체가 사라져도 이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옅어지지 않는구나. 망령이 되어서 도서관을 거니는, 불확실하고 투명한 발목을 떠올렸다. 고야스씨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을까. '나'를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그가 끝까지 품고 있던 질문을 '나'의 도시라는 답변으로 듣기 위해?


모두가 한때 영혼이 타버리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 타버린 자리에 난 구멍의 가장자리를 더듬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벽은 매일 매 순간 형태를 바꾸는 무르고 부드러운 것이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뿐이다. 이 불확실한 벽은. 벽이 무너지고 도시와 평야가 뒤섞이는 날은 없다. 누구의 도시라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풍경은 모두 다를지 모르지만 아마도 모든 도시에 오래된 꿈을 보관하는 도서관은 있을 테지. 매일 밤 공들여 꿈을 읽는 이도 있을 테지. 그걸 내 영혼의 조각이라고 불러도 좋다. 옐로 서브마린 재킷을 입은, 어린 소년이라고.


하루키는 삼십 대에 이 소설의 초고를 쓰고 아무 곳에도 출판하지 않다가 일흔이 넘어 새로 썼다고 했다. 옛이야기를 다듬고 보강하고 덧붙여서 이제서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시도 아직 벽 속에 있기 때문이겠지. 아직도 오래된 꿈은 선반이 무너질 정도로 많고 매일 기억이 소실되듯 꿈은 읽히고 사라지는 거겠지. 내가 달라지면 영원히 박제되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상처도 아물고 내 앞에 선 미소의 형태도 달라진다. 슬픔과 닮았지만 슬픔은 아닌, 슬픔과 성분이 아주 비슷한 감정이 무성한 식물처럼 자라난다. 그 상한 감정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슬픔은 아니지만 슬픔과 닮은 기분이 들지만.


나의 무르고 불확실한 벽. 나의 무너지지 않는 벽. 나의 고요한 도시. 먼지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나의 오래된 꿈. 나의 육체는 이토록 어색하고 이곳에 있는 내가 그림자인지 본체인지 그것조차 모호한 날들. 그들이 마침내 다시 하나가 되면 그들의 도시는 소년에게 승계되어 어두운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을까. 그들은 마침내 이곳에서 실체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무리겠지.


그러나 더 이상 도시의 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진 않겠지. 운명은 친절하게 '나'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장소로 데려갔으니. 나는 '나'가 부럽다. 물론 그것은 그림자가 어두운 물속에서 발버둥 쳤기 때문이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을 '나'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나의 도시의 차갑고 매끈한 벽에 얼굴을 기대면 쓸쓸하지만 평화롭다. 아직 이 도시를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각수들이 불안하게 우는 겨울이 오기 전 밤이면 나도 창을 열고 벽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나의 도시의 소중한 주민들이여, 한없는 마음을 그대들에게 보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