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희 시집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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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깊고 말수가 적은, 어느 단정한 사람이 현관에 들어서는 장면을 떠올린다. 집안은 훈훈한 밥내로 가득차 있고, '게다가'를 연발하는 귀여운 딸이 달려나와 종알종알 떠들며 반겨주는. 보기드물게 아늑하고 생활의 온도가 느껴지고 그래서 방금 그가 대문 앞에서 툭툭 털고 온 달처럼 둥그렇게 웃는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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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냄새 나는 시집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살이'가 느껴지는 시들이 수저통의 숟가락 젓가락처럼 반들반들하게 놓여 있는 시집도. 뭔가 꽉 막혀 있던 서러운 마음도 어깨에 힘이 풀리며 스르르 놓아지고 코가 벗겨진 신발을 벗으며 안전하고 따뜻한 사랑 속으로 돌아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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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버스를 타고 한강을 지나면 저 많은 불빛 중 내 불빛 하나가 없는 것이 슬퍼서 물에 가라앉듯 몸이 무거웠다. 내가 돌아갈 방 한 칸은 물론 있었지만 아침에 어질러놓은 그대로 싸늘하고 축축한 방은 집이 아니었다. 지금도 난 숙소가 있을 뿐 집을 가지진 못했다. 반들반들한 생활도, 부드럽게 문지방을 넘어 마중나오는 온기도 없이 그저 고독하고 어두운 은신처에 불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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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런 시를 보면 왈칵 부러움이 돋는다. 흉내낼 수도 탐할 수도 없는 것. 한 인간이 일평생을 들여 일구어놓은 행복. 끝이 살짝 처진 어깨가 저 고운 빛 속으로 사라지면 나는 새어나오는 빛을 손가락 끝으로 찍어 팔목 안쪽에 바른다. 흡사 어딘가에 있을 나의 집으로 들어갈 바코드라도 새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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