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9> 당연하지 않아!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어느 나무의 일기』, 9쪽

by 봄부신 날
이처럼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 덕분에 충격이 덜해지는 건 아니었다.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어느 나무의 일기』, 9쪽)

어느 나무의 일기_표지.jpg 어느 나무의 일기_표지


3백 년 된 야생 배나무 트리스탕이 작은 돌풍에 결국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회생 불능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에게는 변명할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 앞부분을 조금 더 살펴보자.


얼핏 보기에 이 작은 돌풍의 희생자는 나뿐인 듯하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고, 땅은 삼주 내내 내린 빗물에 젖어 있었으며, 외래 해충들의 공격이 있었고, 신속하게 방어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우선 3주 내내 비가 내렸다. 비는 나무에게 고마운 친구이다. 그리고 이 비는 트리스탕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다.

다른 나무들은 삼백 살이나 살지 않았기 때문에 3주 동안의 비를 맞고도 견딜 수 있었지만, 트리스탕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많은 비로 인해 뿌리가 흔들렸다. 뿌리는 조금씩 큰 몸통을 힘겨워했다.


그리고 바람이 있었다. 자연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수준의 돌풍이었다. 이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닥치는 것으로 트리스탕으로서는 속수무책의 거센 회오리였다. 외압이었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독하다.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부는 바람이란 치명적이다. 바람은 혼자 오지 않고 미세먼지, 오존, 황사 등 결정적인 독한 것들도 함께 가져온다. 외압이란 그런 것이다. 위험이 오는 걸 알면서 왜 방어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게다가 작은 해충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뿌리를 망가뜨리는 선충들이 달려들었을 때, 늘 도와주던 버섯들은 질소 함유 물질을 내뱉지 못했다. 그런 때가 있다. 늘 도와주던 사람들도 가끔은 자기 자신의 일로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버섯들은 그동안 보내준 질소가 많았기 때문에 트리스탕이 충분히 해충들을 잡을 끈끈이를 만들어낼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헝클어진 것은, 우선 트리스탕이 삼백 살이라는 나이를 가진 할아버지 나무라는 점이다. 그는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 낼 만큼 충분히 건강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도움은 모두 저 멀리에 있었다.


3백 년이나 살았으니 그의 장례식장 앞에서 호상이라고 웃음을 내 보여선 안 된다. 그건 누구의 죽음 앞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의 죽음을 진정 애도하기보다 어떤 평가를 한다.


그의 나이, 살아온 삶의 궤적,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성, 장례식장에 놓인 화환의 수 같은 것들로 그와 그의 자녀들을 판단한다.


트리스탕, 3백 년을 살았지만, 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수많은 이유들이 타당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그 죽음이 그저 담담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죽음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 생명은 무한히 펼쳐진 우주와 같다. 우주는 반짝이는 별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별 하나하나는 수많은 에너지와 인생과 세월로 채워져 있다.

어느 나무의 일기_표지확대1.jpg 수많은 인생으로 채워진 나무

어느 별 하나 빛을 잃을 때, 당연한 것은 없다.

우주가 빛을 잃는 것이다.

우주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사람과의 기억, 사랑과 행복과 슬픔과 아픔이 묻히는 것이다.

어느 나무의 일기_표지학대2.jpg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기억-사랑, 행복, 슬픔, 아픔


누군가 실패할 때,

누군가 아파할 때,

누군가 절망할 때,

누군가 비난을 받을 때,


그는 그럴 만했다고, 그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그가 자초한 것이라고

쉽게 얘기하지 말자.


나는 실패하고,

나는 아파하고,

나는 절망하고,

나는 비난을 받는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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