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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08. 2023

(책꼬리단상) 번듯한 삶-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초딩 때 뺨 맞기

[번듯한 삶, -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면 무엇보다 본인 신수가 편하다. 예컨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학교를 다니거나, 전문직, 하다못해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다녀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절대적인 호의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하다. 요즘 나처럼 어떤 이들은 한평생 자신이 어쩌다 그 지경이 되었는지 타인에게 설명하며 살아야 한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저)



유명한 영화, 친구,에 나오는 명대사.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우리는 옛날부터 신용사회를 살아왔다. 신용의 기준은, 느그 아버지다.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자녀의 품행과 평판이 결정되었다.


옛날, 그러니까 내가 어렸던 시절. 동네가 있고 초등학교가 있고, 그곳이 세상 모든  것이라고 착각했던  그 시절. 우리 엄마는 경희엄마라 불렸고, 우리집은 군인집이라 불렸다. 아버지가 오랜 세월 직업군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군인집 아들이었고, 경희엄마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이미 우리 아버지는 군인이 아니었지만 군인집이라는 호칭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따라다녔다.


첫 직장이었던 대기업에서 나와 홀로 회사를 차렸을 때 나는 깨달았다. 직장이 주는 신용이 얼마나 큰지를. 8년 동안이나 대기업에서 근무했지만, 소상공인이 되어 은행을 찾았을 때 은행에서는 이전의 모든 신용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나는 그저 1인 회사의 무력한 대출자였을 뿐이었다.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은 그것이 부모의 브랜드로부터 만들어질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직장의 브랜드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진 가상의 신용인데, 우리 사회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는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굴 만나서 인사를 할 때, 직장은 괜찮은 사람인지, 부모님이 뭐 하는 분인지 시시콜콜 묻고 따지고 대답하고 재단한다. 고유하고 존귀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허상으로 만들어진 가짜 프레임 안에서 서로를 쳐다본다. 평생 그러다 죽고 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장기간 누워계셨고, 아버지는 어머니 병 수발에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그래서 가난해진 나는 학교에서 내라고 하는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 선생님은 마지막 남은 미납자 6명에게 조회시간마다 종례시간마다 내일은 꼭 가져오라고 입술에 힘을 주어 말했다.


여전히 미납자였던 나는, 숙제 검사를 받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뺨을 맞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빠짐없이 숙제를 다 해갔는데, 공책을 아끼려고 고학년 공책을 사서 숙제를 한 것이 문제였다. 칸이 널찍한 저학년 공책에 글을 쓰면 두세 장은 족히 나오는데, 줄이 촘촘한 고학년 공책에 적으니 반쪽밖에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안에 적힌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뺨을 때렸다. 나는 서글펐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나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교실 뒤에 서서 벌을 섰고 남아서 청소를 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동네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음날 내 손에 육성회비를 꼭 쥐어주었다.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했던 인생이었다.

지금도 그 기준은 여전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이제 자녀들에게 아빠를 증명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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