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만 않으면]
“내가 보기에 귀하는 예술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고민하던 나는 네 말이 옳다고 동의해버렸다.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영원을 앞에 두고 그림에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도,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무슨 고등학교 2학년처럼 투덜거렸다. 영원은 뭐가 늦었냐고, 살아 있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죽지만 않으면 뭐든 될 수 있어요.”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김서해)
이미 소진되어버린 나는,
닳고 닳아버린 나는
과연 그럴까.
죽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흔든다.
희망의 글이라고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글이라고
이렇게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하고서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
혼자 계산해보고
아니라고,
저 공식은 틀렸다고
고개를 흔든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능성의 씨앗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분명 기적이고 축복이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결심한다.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수없는 절망을 경험한다.
곧 좋은 소식이 오겠지.
그 마음 하나로
시간을 응시한다.
맞다.
살아만 있다면
시간은 내 편이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마지막까지 내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성경 글귀가
오늘은 딱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 녀석은
차들 싱싱 달리는 길바닥에서 세상 모르고 잔다.
나도 저런 태평 하나 길어올리고 싶다.
세상 무심하고
세상 평온하게.
살아 있기만 하면,
뭐든 될 수 있을 거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