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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Nov 02. 2023

죽지만 않으면- 퇴사해도 될까요

책꼬리단상

[죽지만 않으면]


“내가 보기에 귀하는 예술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고민하던 나는 네 말이 옳다고 동의해버렸다.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영원을 앞에 두고 그림에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도, 이미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무슨 고등학교 2학년처럼 투덜거렸다. 영원은 뭐가 늦었냐고, 살아 있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죽지만 않으면 뭐든 될 수 있어요.”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김서해)



이미  소진되어버린 나는,

닳고 닳아버린 나는


과연 그럴까.

죽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흔든다.


희망의 글이라고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글이라고

이렇게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하고서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

혼자 계산해보고

아니라고,

저 공식은 틀렸다고

고개를 흔든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능성의 씨앗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분명 기적이고 축복이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결심한다.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수없는 절망을 경험한다.


곧 좋은 소식이 오겠지.

그 마음 하나로

시간을 응시한다.


맞다.

살아만 있다면

시간은 내 편이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마지막까지 내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성경 글귀가

오늘은  딱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 녀석은

차들 싱싱 달리는 길바닥에서 세상 모르고 잔다.

나도 저런 태평 하나 길어올리고 싶다.


세상 무심하고

세상 평온하게.


살아 있기만 하면,

뭐든 될 수 있을 거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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