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두 번째 공황장애
[공황장애 일기] 에피소드 2 - 119에 실려간 10여년 전 공황장애
얼마 전 25년 전 버스에서의 첫 공황장애,라는 제목으로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공황장애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사건을 얘기했었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공황장애라는 이름을 알게 되는 10여년 전 사건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때 저는 파주에서 일하고 있었고 수원 집에는 주말에는 오는 주말부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파주에서는 처음에 거처를 구하지 못해 고시원에서 우선 생활하다가 원룸을 임대하여 살았습니다.
일터에서는 상당한 신망을 얻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당시 저희 집 경제적인 상황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월급을 받아도 계속해서 적자가 생겼고, 6개월 만에 대표님께 그만 두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표님은 그러면 급하게 부족한 일정 금액을 빌려주셨고 급여도 상당히 올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파주에서 일주일간 생활하고 주말에 내려와 일요일 밤 또는 월요일 새벽에 파주로 올라가는 루틴을 반복했습니다.
그때 썼던 시가 몇 편 있습니다. 시는 고난 속에서 나오는가 봅니다.
<집게벌레>
집게벌레 한 마리 세상이 어떤지도 모른 채
누런 방 안으로 들어왔지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리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벽을 기어오르며 새로운
길 하나 찾고 있지
온통 벽뿐인데도 벌레는
앞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삶의 무게를 재곤 하지
미래의 흔적을 찾고 있지
고독의 벽이 깊어지는 시간
나도 벽으로 기어올라 갔지
집게벌레 앞에서 더는 갈 곳없어
함께 울어버렸지
일하다가 갑자기 과호흡이 찾아왔습니다. 손발이 떨리고 온몸에 오한이 들면서 사지마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직원들이 119로 불렀고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링겔을 맞고 안정을 되찾은 후 돌아왔습니다. 안정을 되찾은 후에는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앰뷸런스 안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다급하게 외치며 응급조치 하던 소리가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불규칙적으로 몇 번 이어지자 회사에서는 너무 놀라 아내에게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깜짝 놀라 지인과 함께 파주로 올라온 아내는 나를 치료할 수 있게 수원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병가로 처리해주었고 나는 수원으로 와서 모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한 첫날, 가슴은 무거운 철판이 내리누르는 것 같았고, 수시로 사지를 떨면서 과호흡과 함께 사지경직 증세가 일어났습니다. 의사의 약 처방으로 겨우 안정을 되찾아 숨을 고르게 되자 간호사가 아내에게 일단 집으로 가시고, 혹시 특별한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아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떠나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똑같은 증세로 위급한 상태가 되었고, 간호사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놀란 심장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병원으로 되돌아와 밤을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아내에게 절대 환자 곁은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 옆에는 항상 산소통이 놓여 있었고 나는 언제나 비상대기 환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지 못해 온갖 검사와 더 큰 병원과의 협진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아주대 협진에서 처음으로 "공황장애"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여간 입원하다 퇴원하여 꽤 긴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파주에서는 다시 돌아와 일해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아내는 떨어져 있어서 이런 상태가 된 것 같다며 그렇게 못하겠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대표님이 병원까지 찾아와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완강했습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 직원분이랑 대표님과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때 그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었는데 왜 제게 그런 공황장애가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파주와 수원의 이중생활이 저를 힘들게 한 것인지,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저를 힘들게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경련이 일어나고 마비가 되는 그런 끔찍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25년 전 버스에서의 공황과 십여년 전 사지까지 마비되는 공황 상태와 비교하면 가장 온순한 상태의 공황장애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주에는 비상약을 다섯 번이나 먹었는데 이번 주는 아직 하나도 먹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늘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이 너무 강렬하고 아름다워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루하루, 오전 오후 가슴을 누르는 철판의 무게가 다르고, 무력감과 불안감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지만 오늘은 아직 평온합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랑하는 아내가 돌아와 저를 반기겠네요.
파주에서 적었던 시 한 편 더 올리고 오늘 일기는 마치겠습니다.
<낮달>
아직 햇살 눈부신데
슬픈 모가지로 외로이
세상의 끝에 비켜 서 있다
비처럼 쏟아지는 광채를 마다 않고
발가벗기운 채 그대로
꾹 눌러 서 있다
사랑하기에 떠나야 하고
사랑하기에 떠날 수 없는
밤과 낮의 아픔이
담아둘 수 없는 그리움이
이미 하늘에 가득하다
노을은 낮달의 슬픈 눈물이다
멀리멀리 퍼져 우주 끝까지 물들이는
붉은 그리움이다
붉은 십자가 그 아픔이다
이제 밤엔 달이 없고
태양은 결코 밤에 뜨지 못하지만
낮달은 그리움으로 눈도 깜짝 안 한다
그 자리에서 죽고 말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