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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an 19. 2024

(책꼬리단상) 인생 부적격자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인생 부적격자]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래, 내가 부적격이야. 그래서 민망하다고.”

  “적격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알아?” H가 말한다.

  “오늘처럼 걷기. 다음번엔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야.”

  말은 쉽다. 나는 자동차 좌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람막이 후드를 푹 뒤집어쓴다.

~~~~~~
지난 몇 년간 실로 많은 것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했다. 아기와 집에 단둘이 있는 것도, 할 일이 없는 상황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럴 때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찾지 못하고 힘겨워했다.

다른 엄마들을 감당하지도 못했다. 수유와 잠에 대한 강박적인 대화, 그리고 아기의 발달 상태에 관한 열띤 토론이 버거웠다. ‘어머니’라는 그 말(어머니, 엄마, 맘)만으로도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한동안 막연하게나마 혹시 나에게 성 역할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스스로 엄마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나는 병원과 슈어 스타트 센터Sure Start Centre(영국의 아동 보육 기관–옮긴이)도 잘 감당하지 못했다. 산모 병동에서 한 산파는 내 가슴을 갑자기 꽉 쥐어서 그나마 나오는 몇 방울의 모유를 짜냈다. 그런 모든 끔찍한 접촉, 그런 모든 지독한 돌봄으로 세상은 넘쳐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캐서린 메이 저/이유진 역)




누구나 자책을 한다.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고, 아예 시도할 생각조차 접어버리기조차 한다.

저자는 많은  것을 힘들어했다. 심지어 어머니가 되어 아이와 단둘이 있는 것조자 힘겨워했다. 어머니들의 이야기에도 끼이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어떤 것에는 자신감을 가진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언제나 불안했고 떨었다. 출장 갈 때마다 하늘의 신을 붙잡고 기도를 해야만 회의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0년이나 직장 생활을 하고 전문가라고 불러주는 데도 나는 적격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1등을 해야할 필요가 없다면, 사실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무엇이든 언제든지 시작해도 좋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또 그 방면에 유독 취약할 수도 있다. 유전적일 수도 있고, 질병이나 호르몬 문제일 수도 있다.

어제는 너무 좋았는데 오늘은 너무 엉망이다.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텔레비전도 흥이 안 나고, 그런 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생 부적격자는 아니다.

작가의 친구 H가, 오늘처럼 그저 걸으면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한 것처럼, 그저 오늘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 충실하자. 내일은 내일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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