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22일 (월)
[공황장애 일기] 약을 끊기로 하다
2024년 1월22일 (월)
어제는 무기력하게 거의 하루종일 잠만 자는 바람에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 커진 게 아니었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좀 좋아진 것 같았는데 또 확 나빠지고 이런 주기가 반복되니까 힘도 빠지고 계속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아내도 이젠 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아내마저 불안장애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용기를 냈다. 아내에게 더 이상 아프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계속 걱정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공황장애는 약을 꾸준히 먹으면 대부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초기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전 두 번 공황장애 수준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약한 수준에 해당하는 상태가 아닌가.
밤새 눈이 내려 도로 상태며 도보 길이 좋지 않았고 오늘부터 한파가 시작된다고 했다. 아내가 안 데려다 줄 거냐고 해서 막둥이 출근 버스 정류장까지 6시 반에 일어나 한번 운행을 했지만 8시 40분에 다시 차량 운행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쉬지 말고 바로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걷기를 해보기로 했다.
사실 공황장애와 갑상선저하증으로 인해 먹는 약이 많아졌다. 이번 토요일 상담을 하고 나서는 기존 공황장애 약에다 수면안정제 약이 취침전 약으로 추가 처방되었다. 우선 내가 약을 먹는 루틴은 이렇다. 아침을 먹기 전 공복에 갑상선저하증 약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공황장애 약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고지혈증과 칼슘, 오메가3를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공황장애 저녁 약을 먹고, 취침 전에 수면안정제를 먹는다. 그리고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한약을 먹는다.
오늘은 우선, 마음을 강하게 먹고 아침 루틴의 공황장애 약을 먹지 않고 걸렀다. 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공황장애 너, 한판 붙어보자, 하는 독한 마음이었다. 설마 아침 한 번 빼먹는다고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일어나겠는가. 죽지도 않을 것이고, 이것 때문에 과호흡이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단번에 잘라내리라.
이제 앞으로는 약을 먹지 않으리라!
단호한 결심을 하고 식탁 옆에 놓여 있던 약봉투를 안방 책상 서랍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하의 내복을 입고 바지를 입었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목도리와 귀마개를 착용한 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가장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늘 걷는 목적지는 2월에 이사하게 될 집이다. 막내딸이 출근길 교통편을 하도 걱정하기에, 이사하기로 한 집에서 1차 버스정류장까지 몇 분이 걸리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기도를 한 뒤 눈이 약하게 깔려 있는 세상밖으로 나갔다.
약간 두꺼운 내복을 입었는데도 하체를 파고드는 추위가 실감났다. 얼굴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4천보를 걸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최대치 걸음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처럼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느리게 걷지 않고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출근하는 것처럼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한판 붙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사갈 아파트까지는 쉽게 걸어갔다. 그런데 돌아오면서부터 허리도 아파오고 가슴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굴복할 순 없었다. 잠깐씩 풍경을 찍을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대단한 걷기였다. 4200보가 넘었고 40분 이상 걸었다.
정말 다행히 급격한 과호흡은 나타나지 않았다. 과호흡 증상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우선 결명차를 마시면서 호흡을 골랐다.
과호흡이 먼저 태클을 걸어오지 않도록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오래 전에 재밌게 봤던, <트루먼 쇼>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짐 캐리 배우는 이 영화로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과도한 웃기기를 시도하는 짐 캐리 같은 배우의 연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만 '트루먼 쇼'는 그 정도가 딱 알맞았고 사실은 웃기기보다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오래 전에 봤지만 정말 새롭게 보는 것처럼 많은 장면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내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새로운 2부가 덧붙여진 것처럼 모든 내용이 새로웠다. 나는 짐 캐리가 배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오늘 행동. 호기롭게 공황장애와 한판 맞장을 뜨려 한 나의 행동을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은 명대사가 터져 나왔다.
당신은 두렵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거야.
짐 캐리도 그랬을지 모른다. 진실을 알고 나서도 익숙하고 편안해진 그 섬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보내주는 제작진이 짐 캐리에게 바닷물을 무섭게 여기도록 아버지를 바다에 빠져 죽게하는 설정을 하여 트라우마를 가지게 하였다. 짐 캐리는 바다가 바로 정복해야 할 대상, 두려움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 실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내가 계속 혼잣말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진짜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제작진이 바다에 풍랑을 일게 하고 천둥번개를 치게 하고 끝내 보트를 전복시켜 그의 탈출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두려움을 극복한 짐 캐리는 자신의 삶을 찾아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갔다.
마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과거의 죄수의 신분을 버리고 새로운 신분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두려움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나는 약을 끊기로 결정하고 아침약, 저녁약 모두 먹지 않았고 취침 때만 수면안정제를 먹었다.
그리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몇 개월 더 편안히 쉬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이제는 기존의 직장에서 수행하던 30년 경력을 완전히 버리겠다고 선포한 결심을 버리고 구직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 회사는 신입을 뽑겠다고 공고했는데, 나는 일단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약 면접도 보고 출근도 하게 된다면 광역버스에서 내린 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회사다. 하지만 나는 극복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오늘 나는 공황장애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오늘은 나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