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Mar 12. 2024

[퇴사가 아니라 퇴직입니다]  - 나비의 꿈

퇴직일기 2024년 3월12일 (화) 퇴직 60일 째

콩나물, 찌개용 두부, 수향미 현미, 느타리 버섯, 새송이 버섯, 상추, 씻어나온 콩나물, 옛날 소시지, 대파, 어묵, 깻순, 샐러리, 양반김 20봉, 아침식사용 스프 5개, 냉동고기만두 1+1, 바나나.



방금 가까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왔다. 총 19개 상품에 54,510원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퇴직한 뒤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생활비는 통장에 든 체크카드로 결제한다. 그러니 결제할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숫자가 푹푹 줄어든다.



퇴직을 하면서 아내에게 한달 생활비로 150만원 정도는 내가 벌 터이니, 부식비용은 기존처럼 내가 다 처리하겠다고 했다. 내 계산으로는 한 달 150만원이면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물론 아내는 어림도 없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퇴직 후 두어 건의 외주 아르바이트를 하여 약간의 생활비를 모았다. 3월 생활비로 150만원을 이체하고 체크카드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12일이 지난 현재 30만원이 채 남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무언가를 살 때마다 간이 콩알만해진다. 자동차에 기름도 넣어야 하고 부식도 두어 번 이상 더 지출해야 할 텐데. 그래도 지난 2개월은 잘 버티어왔다. 이번 달도 그럭저럭 잘 버틴다면 적게 소비하는 습관을 만들면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물론 한 달 최소 150만 원 이상은 벌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지만.



점심 식사는 큰 딸과 함께 먹었다. 마트에 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니 아빠 혼자 가란다. 그래도 점심 먹은 설거지는 큰 딸이 말하지 않아도 혼자 잘한다. 뭘하나 봤더니 친구 생일이 있나 보다, 편지지를 찾아 편지를 쓰고 있다. 큰 딸은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이다. 오늘은 오후 3시에 성인 여자분이 집으로 와서 레슨을 받는다. 그 시간에 나가서 장을 볼까 하다가, 식사를 하고 30분 가량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혼자 가서 장을 봐온 것이다. 물론 자동차를 끌고 갔지만 마트 안에서 최대한 돌아다녔다.



5만4천원이면 저렴하게 장을 본 것 같다. 아이들이 종갓집 김치를 좋아하는데 사질 못했다. 그동안은 인터넷으로 종갓집 배추김치를 사 먹었는데 1+1으로 9,900원에 팔던 상품이 없어지고 단위가 달라져 있어 선뜻 결제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트에서도 종갓집 김치가 보이지 않는다. 배춧값이 많이 올랐나 보다. 마트로 장을 본 것 외에도 인터넷으로는 아침 쥬스용으로 넣을 유기농 케일 2kg을 샀고, (주로 내가 먹는) 식사용 채소로는 모듬쌈 1kg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유기농 케일이 먼저 왔는데 잎이 얼마나 큰지 내 손바닥보다도 훨씬 크다.



예전에는 마트가 아내의 직장과 집 사이에 있어서, 아내가 퇴근하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내가 준 카드로 그날그날 식재료를 사오곤 했는데 지난 달 말에 이사한 뒤로 경로가 바뀌면서 아내가 굳이 둘러가서 사올 일이 없어졌다.



회사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떠나 집에서 콕한 지 어느새 2개월이 지났다. 2개월이 마치 1년처럼 느껴진다. 1개월은 공황장애를 치료한다며 한의원이며 정신건강과 병원을 다니느라 다 보냈다. 몸도 많이 아파서 교회도 한달 동안 가지 못하는 등 증세가 심각했었다. 몸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이삿날이 다가와 이사갈 준비, 이사 그리고 이사 후 정리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모든 옵션이 갖추어져 있던 신축 아파트에서 살다가 20년 된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오다보니 없는 게 많아 중고물품 거래하는 앱으로 에어컨까지 구매했다. 에어컨은 지난 주 금요일날 설치가 완료되었다.



그동안은 아파서 쉬고 요양한다고, 이사한다고 할 일이 많이 있었는데 정작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니,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집에 남게 되는 이 상황이 나 스스로에게 매우 어색하게 다가온다.



과학 용어에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비유하자면 관성의 법칙 정도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항상성이란 것은 생물이 최적화된 조건에서 벗어나 변화되는 것을 싫어하고 기존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편안하게 하루하루 잘 굴러가면 그것이 가장 좋은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면 항상성이 깨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성이 늘 편안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초등학생이 소녀 가장이 되어 할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때 초등학생은 힘들지만 소녀 가장의 역할, 할머니를 정성껏 돌보는 역할을 오래할수록 이 환경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다 할머니 병이 나아서 병간호가 필요없어지거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병간호를 할 수 없게 될 때, 소녀 가장은 더 좋은 환경이 되었음에도 항상성이 깨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좀 유식한 듯 과학용어를 꺼냈지만 이 항상성은 사회복지나 심리상담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용어다. 중년의 빈둥지 중후군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늘 같은 경우 매우 아픈 환자의 환경, 이사로 인해 분주한 환경이 항상성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 약을 먹으면서 안정적으로 건강을 관리하게 되고, 이삿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내 항상성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내를 출근보내고 큰 딸은 잠을 자고 있는, 빈 방, 빈 거실에서 또 다른 슬픔, 또 다른 낯섦의 나로 존재했던 것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퇴직을 할 줄 몰랐다. 이번 퇴직은 내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나는 순탄하게 적어도 2~3년은 더 회사에 적을 두고 봉급자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쥐꼬리만한 금액이지만 국민연금을 탈 수 있는 64세까지는 어떻게 하든 버텨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나를 갑자기 회사에서 집으로 보내버렸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나는 퇴사를 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퇴직이다. 처음에는 이직을 하려고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지만 내년이 환갑인 사람을 뽑아줄 회사는 없었다. 내가 사장이라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최고령자로 무려 12년간이나 근무해온 것이 이미 기적일지도 모른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도 포기했다. 그럴 이유가 있다.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나는 그냥 나대로 살아야 했다.



1991년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대기업 삼성에 몸을 담을 때는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다. 나는 평생 삼성맨으로 잘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편안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대기업에 적을 두고 아직까지 잘 버텨내는 동기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나는 튕겨져 나왔거나 뛰쳐 나왔거나 걸어나왔다.



가족에게, 자녀들에게 아빠의 실직을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직장이 없다는 것은 수입이 없다는 것인데 자녀들은 아직 실감을 잘 하지 못한다. 아빠가 왜 막내딸의 통신비를 더 이상 내어줄 수 없고, 보험료를 더 이상 내어주지 못하는지. 막내도 대학을 졸업하고 작년 하반기부터 인턴 생활을 계속 하고 있어 나름 최저 수준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아빠가 통신비랑 보험료를 못 내니까 직접 내라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 아빠의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빠는 늘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니다. 이제 아빠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이번 주에 독서토론이 있어 오전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를 다 읽었다. 내 수준을 넘어서는 글이어서 그냥 해치웠다. 빨리 읽고 해설서나 다른 책을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부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도 많은 준비와 홍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믿는 곳은 없다. 어쩄든 나는 이제 내가 그토록 꿈꾸어왔던 전업작가가 되고 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려고 나뭇가지에 몸을 대롱대롱 매달고 날개를 펼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떠밀리듯이 나는 나비가 되어 간다.


내 소원은 한 달에 150만원을 버는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을 가르치고, 나누고 또 배우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오늘로써 퇴직한 지 60일이 지났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

완전히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날개가 꿈틀거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