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Mar 20. 2024

[경치도 보지 않고 걷기만 하면 뭐 해!]

책꼬리단상-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경치도 보지 않고 걷기만 하면 뭐 해!]



우리는 걷고, 멈추고, 사진을 찍고, 다시 걷고, 비탈을 오르고, 기슭으로 내려간다. 하틀랜드 키에 당도하니 4시 정각쯤이다. 지도에서 십여 센티미터 내려가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마저 우리와 함께 그 몽환적인 경치에 흠뻑 빠져버렸던 것처럼.


오늘 웰콤마우스까지는 못 갈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하틀랜드 키에서 호텔 바에 자리를 잡고, 섄디 몇 잔과 칩 몇 봉지를 주문한다.


“나도 너랑 완전히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버렸네.” 베시가 말한다. “난 진짜 영원히 걸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이번에도 등고선을 제대로 계산한 건지 모르겠네.” 내가 말한다.


“아니면 쉬면서 경치를 봤던 게 시간을 잡아먹었을 수도 있거든. 그런데 경치도 보지 않고 마냥 걷기만 하면 뭐 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캐서린 메이 저/이유진 역)






아스퍼거 증후군 여성이 오래된 대학 친구 베시와 걷기를 한다. 늘 혼자 걷다가 이번에는 친구 베시가 함께 동행했다. 남편 H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아내가 오라고 하면 그 곳으로 차를 몰고 가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 아내를 향한 사랑과 배려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가끔씩 남편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느낀다.


오늘 주인공은 시간마저 잊을 정도로 아름답고 몽환적인 풍경에 빠졌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조금 걷다가 또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원래 목표로 했던 장소까지 도착하지 못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왜 목표한 장소에 도착하지 못했는지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아마 우리가 아름다운 경치에 시선을 빼앗겨서 시간을 빼앗겼나 봐, 라고 말한다. 그러다 이내 고쳐 말한다.


"경치도 보지 않고 마냥 걷기만 하면 뭐 해!"





걷는 목적은 무엇일까. 자신을 스스로 이겨보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몇 달 동안 어디부터 어디까지 걷겠다고 결심을 하고 목표를 세우고 하루치 걸을 거리를 계산하고 날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걷는다.


아스퍼커 증후군인 주인공은 그렇게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걷고 있다.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그로서는 그런 결단과 모험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신이 곧 자신임을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패배하고, 무서워하고, 소심해하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려 발버둥친다. 그 결심과 단호함은 이를 악물고 혼자 산등성을 넘고 돌부리에 채이고 하면서도 하루치 걷기를 끝내기에 있다.


하루치 목표량을 채워 걸으면 기분이 좋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배가 아팠거나, 기분이 우울했거나, 날씨가 좋지 않았거나 해서 하루치 거리를 다 걷지 못하고 저녁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기분도 꿀꿀해진다.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한다.


그래서 목표라는 것은, 나를 채찍질하고 성장하게 하는 단련의 성과도 만들어주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의 열등감을 만들고 더 비참한 자신을 목도하게 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요즘 나는 마음이 조금 조급해지고 바빠졌다.

더 이상 실직 상태로 집에서 마냥 책만 읽고 쉴 수는 없다. 이제 더 이상 회사 취직은 어렵고,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겠다. 하고 생각한 것이 "성인 글쓰기 창작반"이다.


일단 3개월 기초반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함께 공부할 사람을 모집 중에 있다. 두 명만 모이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명은 제자?가 되어 내 수업을 듣고 싶다고 확정을 한 상태이다. 한 명만 더 나를 믿어주고 내 글쓰기 수업을 들어줄 사람이 생기면 된다. 하지만 어디에다 광고를 하고 어떻게 사람을 모을 것인가? 공부할 장소는 이미 예약을 완료한 상태다. 내 마음이 조급해지고 분주해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돈을 받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기에 수업 준비도 꼼꼼하게 해야 한다.


"경치도 보지 않고 마냥 걷기만 하면 뭐 해!"




오늘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이 부분을 읽었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경치를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감이 급해질수록 주변을 보아야 한다. 급해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주변을 보면 꽃이 보인다. 아름다움이 보인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근본을 깨닫게 해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표는 걷기의 목표와 같다.

하지만 꽃을 보지 않고 마냥 걷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다면 그건 나를 더 노화시키고 퇴락시키는 길로 나아가게 한다.


경치를 보며 글쓰기 수업 준비를 하자.

그러면 더 풍성한 수업 준비, 더 여유롭고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서 공부하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더 많은 것들을 보며 나도 성장할 것이다.


오늘 하루,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조금 더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시면서 4월 개강을 준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꼬리단상) 일상의 연약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