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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날 시편

(시를 쓰며) 주름잎 꽃

봄꽃시

by 봄부신 날


<주름잎 꽃>


2024-06-10 주름잎꽃.png


1.

슬픔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젖은 몸에 화석처럼 박히는

주름 한 줄


겨울의 한기를 견디지 않으면

네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지울 수 없는 상처 새긴 채

너를 받아냈구나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여린지

그렇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주름이 백 개 생긴다 해도

널 포기할 순 없었지



2.

친구도 누이도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바위틈 나 홀로

낮게 엎드려 우네


볼품없이 자라난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왜 나를 낳았냐고


주름도 창피해

숨고만 싶었지




3.

검고 깊은 주름이

사랑이라는 걸


사랑이 없으면

세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내가 바로 그 주름이고

그 주름의 사랑이고

그 사랑의 세상이라는 걸


몰랐네




4.

알았네


햇살 한 줌 슬그머니

바위틈 비출 때


바람 한 줌 살며시

여린 입술 흔들 때


나도 한껏 부풀려

입술 가득 주름으로 채웠지


차라리 내가 주름이고 싶어

온몸 가득 주름이고 싶어

꽃턱 가득 힘을 주고

죽을 듯이 나를 받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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