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Jun 17. 2024

(책꼬리단상) 페달을 밟는 힘

<페달을 밞는 힘>


그래서 누군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고. 페달을 세게 밟을 수도 있고 약하게 밟을 수도 있지만 페달을 밟지 않는 순간 자전거는 바로 쓰러지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싫든 좋든 자전거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페달을 계속 밟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딸아, 돈 공부 절대 미루지 마라 : 돈과 인생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조언 50 | 박소연 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만 그럴까, 우리 사는 모든 것이 그렇다. 결국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페달을 밟는 인생이다. 다만 어릴 때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기 어려우니까 뒤에서 잡아주어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 준다. 하지만 세 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바뀌고, 결국은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처음에는 비틀비틀 꼭 넘어질 것 같지만 결국에는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페달을 밟고 위 아래로 다리 운동을 하는 한 자전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길이 평탄하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가 생긴다. 그건 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다. 커다란 바위일 수도 있고, 물 웅덩이일 수도 있다. 장애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난다.


그때 페달을 멈추지 않고 그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발을 페달에서 떼는 순간,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진다. 언제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을까 생각들 만큼 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애물이 없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수 있다. 자전거 튜브에 구멍이 나서 바람이 빠져버리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 몸이 아프면 나는 누울 수밖에 없다. 몸에서 생기가 다 빠져나가 버리면 바람빠진 풍선처럼 우리는 쪼그라든다. 삶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쪼그라든다.


장애물도 없고, 자전거 튜브에 구멍이 나지도 않았는데, 페달을 밟아도 밟아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그런 때가 있다.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잡아 당기면 자전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페달을 밟는 힘보다 더 큰 힘이 나로 하여금 자전거 페달을 밟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면 결국은 비틀거리다 넘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 삶은 대본조차 없는 생방송이라고 했던가. 정민에게 삶은 녹음 방송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고 행동과 태도, 표정과 자세까지 다 변화하는 녹화는 버거웠다. (김현주, 내일의 어제, 35쪽)


이상한 놈과 평생을 살면서 삶을 망치느니 헤어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괴로움보다 외로움을 선택하는 게 옳을 때도 있으니까. (김현주, 내일의 어제, 39쪽)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참혹하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빠를수록 좋다. 내 삶을 온통 짓밟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그곳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부정 에너지만 쏟아내는 사람과 같이 있다 보면 결국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페달을 계속 밟도록 옆에서 힘과 응원을 해 주는 사람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응원해주는 사람.

사랑해주는 사람.

지지해주는 사람.

믿어주는 사람.

페달을 밟을 힘이 없을 때, 대신 밟아줄 수 있는 사람.


세상은 페달을 밟는 자전거과 같고, 녹화 방송이 없는 생방송이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방향과 기쁨의 크기와 인내의 깊이는 달라진다. 힘들지만, 땀을 훔치며 여전히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건, 내 옆에 누군가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황장애자가 읽은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