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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n 19. 2024

(숲속의 빨간신호등) 12. 신호대 만들기

환경생태동화 

바람이 우수수 리초네 앞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나뭇잎 몇 장이 팔랑거리다 바위 위로 떨어졌습니다. 올리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게."

올리 할아버지는 동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먼저 빨간 신호등을 만들어 세우자구. 그래서 괴물이 달리기를 멈추고 우리가 무사히 길을 건너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지. 쿨럭쿨럭. 그렇지만 빨간 신호등에도 멈추어 서지 않는다면 그 때 싸리 박사 말대로 하는 거야. 어떤가?"


싸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계산하는 듯 했습니다. 한참 뒤에 싸리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할 수 없죠. 대장 할아버지 말씀이니까 따르도록 하겠어요. 그렇지만 제 의견을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신호등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때는 제 말대로 다같이 싸워야 합니다.” 


싸리가 순순히 올리 할아버지 말을 받아들이자 모두들 와- 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싸리는 고개를 살짝 숙여 답례 인사를 했습니다.

"흐음. 이제 신호등을 만드는 게 문제군."


올리 할아버지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까치 남편 우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구구랑 오면서 생각해 봤는데 길 옆에 있는 나무를 이용하는 거예요. 나뭇가지를 길 쪽으로 휘게 하면 사람들이 만든 신호대랑 비슷해져요. 거기다가 빨간 등을 다는 거지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

부들 박사가 얼른 찬성했습니다.


"뚜루 가족이 나뭇가지를 길 쪽으로 구부리는 걸 도와주면 되겠군. 나무를 잘 타니까 말야. 쿨럭.“ 

올리 할아버지가 너구리 뚜루를 부추겼습니다.


“그거야 식은 죽 먹기죠. 우리 너구리들은 나무타기 선수예요. 아마 오소리 할아버지보다도 더 잘 탈 걸요?” 

뚜루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빤 힘이 좋아서 나뭇가지를 쉽게 구부릴 수 있어요.” 

남아 있던 뚜루 아들 또르가 아빠 어깨 위를 올라타면서 말했습니다.


“자, 어서 신호댄지 뭔지를 만들어 보자구. 쿨럭쿨럭."

나이 많은 올리 할아버지가 팔을 걷어 부치자 다른 동물들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영차영차. 노랫소리에 온 산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들쥐 까루 가족과 청설모 가족은 이곳저곳에서 나무 덩굴을 모아 끈처럼 길게 연결했습니다. 족제비 타랑 가족은 까루네가 모아 온 덩굴들을 나뭇가지에 튼튼하게 몇 겹으로 묶었습니다. 족제비들도 나무를 잘 타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동물입니다. 너구리 뚜루 가족은 제일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나뭇가지를 길 쪽으로 구부렸습니다. 뚜루 가족이 몽땅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라가자 나무가 땅에 닿을 듯이 도로 쪽으로 휘어졌습니다. 까치 가족과 산비둘기들은 끈을 물고 반대편 나뭇가지로 날아갔습니다. 도로의 건너편 나뭇가지는 크게 휘어지지 않아 부들 박사가 나뭇가지 끝에 앉아 살짝 구부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양쪽 나무에 덩굴을 묶자 두 나무는 길을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야호, 드디어 신호대가 만들어졌어요."

구구 가족과 까치 가족이 날개를 휘휘 저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제 빨간 등만 달면 되겠군. 그런데 빨간 등은 어디 있지?"

부들 박사가 까치 부부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빨간 등?"

우리와 끼리는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모두 까치 부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그건......."

"그래, 빨간 등이 없잖아."

싸리 박사가 소리쳤습니다.


"죄송해요. 미처 빨간 등 생각을 못 했어요."

까치 부부와 구구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아- 

여기저기에서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빨간 등 생각을 못 했을까?'

'아, 빨간 등 문제가 있었구나.'

빨간 등을 생각하지 못한 까치 부부와 산비둘기 구구는 날개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싸리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까치 부부와 구구를 비난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멍청하게 생각하는 게 그 모양이지. 새들은 다 그 모양 그 꼴이라니까. 그래서 새대가리라는 말이 있잖아."

싸리는 흥분한 나머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입 밖에 내고 말았습니다. 올리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싸리를 나무랐습니다.

“자넨 지금 누굴 비난할 자격이라도 있는가? 자네가 신호대 만드는 데 거든 게 무어 있나? 쿨럭쿨럭.” 

“어, 어, 그게 그러니까.......” 

올리 할아버지는 화가 난 듯 나뭇가지를 높이 들고 싸리 앞에서 휘휘 휘둘렀습니다. 싸리가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우리들이 쉬고 있을 때,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괴물에 대해 알아 왔는가? 구구와 까치 부부가 아닌가? 쿨럭. 그 누구도 그런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걸세."

올리 할아버지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습니다.


"맞아요. 우리 모두 수고한 까치 부부와 구구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앵초와 앙띠가 박수를 쳤습니다. 부들 박사도 큰 날개를 흔들며 박수를 쳤습니다. 머쓱해진 싸리는 휑 하니 꼬리를 감추며 가족 속으로 숨고 말았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우리가 지혜를 모아 보자구. 빨간 신호등을 어떻게 하든지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쿨럭쿨럭."

올리 할아버지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다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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