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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05. 2024

(당신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 네 번째 공황장애

(네 번째 공황장애)



아내와 나는 손을 꼭 잡고 다닙니다. 어딜 가나 손을 잡습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손을 잡고 잡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얘기했습니다. “65세까지만 버틸게. 하지만 지금 직장에서는 길어야 1~2년일 것 같아.”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직장에 더 높은 연봉으로 이직하자 사람들은 내게 능력자라며 엄지척을 해주었습니다. 그 나이에 이직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러니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이직했다는 것은 아직 내가 가진 능력이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사는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내가 새로운 회사, 즉 내 마지막 회사로 옮기기 전, 내가 가려는 팀은 팀장은 물론 팀원까지 모두 회사 일이 힘들어 다 떠난 상태였습니다. 회사는 따낸 과제들을 해내고 새로운 과제를 또 따서 매출을 올려야 했기 때문에 팀원이 다른 팀에서 새롭게 급조되어 구성되었습니다. 경력자들을 새로 뽑고 다른 팀에서 이쪽 팀으로 옮겨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해본 사람이 별로 없이 몸으로 때우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여기저기서 급조된 팀원들도 외인구단처럼 일당 백을 하며 엄청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첫 직장이었던 막내가 상처를 입고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습니다. 정말 제 딸 같은 나이의 아이였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중간 책임자급 경력자가 참지 못하고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토일 없이 일하던 급조된 팀장도 퇴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팀은 다시 엉망진창인 팀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성비 없는 정부과제 하나에 묶여 일 년 내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같이 일하던 팀장이 퇴사해버린 것입니다. 일은 내가 다 했지만 그래도 팀장이 이름이라도 걸치고 있어서 약간의 외벽은 존재했는데, 이제 그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나는 대표에게 무능한, 아니 월급값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내가 그 과제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 과제가 그렇게 사람 에너지를 잡아먹는 일인 줄은 아무도 몰랐는데, 나 혼자라도 버티면서 매주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그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돈이 안 되는 일에 내가 꼬박 매여 있으니 내 월급이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대표와 나는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만든 과제 보고서 하나에 들어간 시간까지 점검하며 효율을 따지던 대표는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감정적으로 내게 달려왔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다 앉아 있던 조용한 사무실에서 대표와 나는 30여 분간 설전을 벌였습니다. 내 직장 생활 3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30년 경력자인 내가 느끼기에, 대표가 내게 신입사원에게 하듯 요구하는 일의 감독방식은 부당했고 치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모든 직원이 숨을 죽이며 나와 대표의 날선 설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을일 수밖에 없는 나는 갑인 회사 대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퇴사말고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공황장애가 나를 덮쳤습니다. 그날은 교회 모 성도의 개업 심방 예배에 목사님과 함께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녁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바로 개업하는 식당에 갔다가 목사님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과호흡이 시작되었습니다. 얼굴빛이 노랗게 되었습니다. 이미 기존에 수없이 많은 과호흡 상황을 겪어 봤기에 지금 무엇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켜 목사님과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호흡을 최대한 조절했지만 거센 파도처럼 내 심장은 나를 밀어붙였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걸음을 빨리 하며 목사님에게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빨리 먼저 가보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짧지만 굵게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나는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빠른 걸음으로 내 역 공영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로 뛰다시피 걸어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거는 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집까지는 빨리 가면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차 안에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나는 과호흡에 숨을 헉헉거리며 차를 몰았습니다. 다행히 차에 앉으니 오히려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대한 과호흡에 의한 흥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를 통제해야 했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과호흡이 미친 것처럼 나를 들쑤시기 시작합니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겉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호흡을 고르는 데 온 신경을 다 쏟았습니다. 과호흡을 그대로 두었다간 예전처럼 손발이 마비되고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가야할 상황이 생길지도 몰랐습니다. 아내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누굴 부르지 않아도 되겠냐고,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불에 누워 과호흡을 진정시키는데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사이 목사님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집에 잘 들어왔는지 안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다음날 회사에 연차를 내고 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명백했습니다. 나는 10년 만에 다시 공황장애 환자가 된 것입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2주치의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신경제가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색깔로 약봉지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퇴사를 마음에 먹었지만 당장 실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달을 더 채워야 1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습니다. 5분이면 걸어갈 거리인데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장소인 것 같은 환상이 밀려왔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걸어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나를 덮쳤습니다.



그래도 버텨야 했습니다. 신께 기도했습니다. 왜 이런 시련을 주냐고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퇴직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1년전 입사일이었던 날까지 버티며 겨우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퇴사하자마자 진짜 공황장애 환자가 되어 몸져 눕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걷기만 하면 과호흡이 나를 휘감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치 코로나 환자가 집에서 격리된 채 밥과 음식을 쟁반에 공급받아 먹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침대에 앉아서 가족이 가져다주는 식사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조금씩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 바로 앞까지 걸어 나갔다가 들어오는 일부터 했습니다.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를 훈련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과호흡이 몰려와서 나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조금씩 그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내어 더 걸어보았습니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도 과호흡이 오지 않은 건 거의 두 달이 다 지나서였습니다.



니는 죽었다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이번 공황장애는 내 인생에서 네 번째 일어난 것입니다. 이번 공황장애가 내 인생 마지막 공황장애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습니다. 비상약도 가끔 먹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글쓰기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황장애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찾아오긴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그 두려움, 그 공포를 이겨내는 인지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 역시 아직도 가끔은 힘들 때가 있어 비상약을 먹습니다. 하지만 공황장애 따위가 나를 조종하도록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상황이 나를 조정하지 않도록, 상황이 내 정서와 감정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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