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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19. 2024

두 번째 공황장애

날이 쨍하고 빛났던 날로 기억합니다. 창원에서 직장생활하다 금융위기(IMF) 여파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저는 창원에서 특허정보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수입이 시원치 않았고, 서울에서 특허정보 사업을 시작한 팀들로부터 지속적인 합류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창원 생활을 접고 서울이라는 미로 같은 도시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시골'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본가가 부산이라고 해도, 촌에서 왔구먼,이 한결 같은 말이었습니다. 서울 다른 지역이나 경기도에서 온 것이 아니면 모두 촌에서 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산을 제2의 수도로 알고 있던 저와 아내는 서울사람들의 이러한 시선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아니, 부산을 촌이라고 하다니.



진해에서 아파트를 팔고 서울로 왔지만 그 돈으로는 부산 달동네 오르막길에 있는 연립주택을 전세로 겨우 얻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생활의 질이 확 떨어졌습니다. 좁은 동네와 작아진 방 그리고 지저분한 환경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서울 사당 지역으로 출퇴근한다는 자부심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울을 떠나야만 하는 잊지 못할 사건이 생기면서 우리는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 그 뒤로 20년 이상 살고 있는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직장 가까운 곳 서울에 집을 얻었으나 10개월 만에 우리는 짐을 쌌습니다. 여기서 밝힐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수원에서는 진해 때와 비슷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우리 가족의 수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원에서 서울  사당으로 직행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좌석버스임에도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꽉 채워 운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출근을 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질병의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버스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마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얼굴은 노랗게 변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구토가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내라고 무슨 해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같이 문자로 그저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대로 계속 가다간 죽을 것 같다는 공포에 어딘지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바깥 공기를 마시니 정신이 좀 들면서 살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날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많은 버스는 타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예기불안의 증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만 봐도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버스를 안 타고 출근할 수가 없어 다음날 다시 버스를 탔습니다. 제가 버스를 탈 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정류장을 거쳐갈수록 사람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도 아내와 수많은 문자를 했습니다. 아, 어떻게 해. 너무 힘들다. 참기 힘들어, 같은 문자를 아내에게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혼자 참아낼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결국 저는 며칠 그렇게 중간에 내려 버스를 몇 대 보내고 출근길 러시아워가 사라진 뒤에야 버스를 타고 늦게 늦게 출근했습니다.



이번에 공황장애가 다시 발병하면서 그때를 다시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공황장애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그때 아마도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도 그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공황장애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떻게 치료가 되고 계속 출근을 할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한동안 버스 타기를 두려워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서울까지 출퇴근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회사가 강남 쪽으로 이사가면서 자동차로 출퇴근한 기억은 선명합니다.



이번에 겪고 있는 공황장애는 밀폐된 장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1호선 열차에서 환승까지 하며 출퇴근을 잘하고 다녔습니다. 지난 주에 올린 세 번째 공황이 과호흡에 따른 사지마비 증상까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났고, 오늘 회상해보는 두 번째 공황장애는 버스 밀폐 상황에 따른 공황으로 세 번째에  비하면 상당히 약한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버스 안에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그렇게 공황으로 몰고 갔는지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갑작스런 서울로의 이사와 수원으로 10개월 만에 이사하게 된 사건,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고된 상황 같은 것들이 겹쳐져서 제게 부담을 안겨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남들은 다 견디면서 다니는 직장생활. 저는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나는 왜 그렇게 유리멘탈일까' '나는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람에 불과할까'하는 자책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잘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까지 그렇게 모두 이겨낸 것처럼 이번에도 결국은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은 찾아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나가는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자신과 싸워 봅시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맙시다.



저에게는 악몽과 같은 첫 번째 공황장애 이야기가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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