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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04. 2024

(숲속 빨간신호등 2부) 2.코스모스 결혼식

생태환경동화

2. 코스모스 결혼식  

   

리초는 얼마 전 따오와 결혼했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오소리 숲에 살던 동물들이 목숨을 무릅쓰고 길을 건너 지금의 뿌리산 숲으로 온 지, 해님이 스무 번 하늘 위로 떠올랐다가 산 아래로 사라졌고 달님이 스무 번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땅 아래로 숨었던 때였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졌던 너구리 뚜루는 다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엄마 사슴 리오가 죽고 나서 꼭 둘이서 붙어 다니던 리초와 따오는 이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따오는 겨울이 끝나 갈 무렵이 되자 뿔이 봉긋 솟아올랐답니다. 뿔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고 그러면서 따오는 어느새 늠름한 청년이 되었지요. 아니나다를까 소녀 같던 꽃사슴 리초도 아리따운 숙녀가 되었어요. 리초와 따오는 첫 코스모스 꽃이 피는 날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답니다.      


코스모스가 피는 걸 찾아내는 일은 날쌘 들쥐 까루 가족이 맡기로 했지요. 물론 까루가 아니더라도 모든 동물 친구들이 나서서 코스모스가 피는 걸 눈이 아프게 찾아낼 테지만 말입니다. 까루는 어느새 손자들까지 생겨서 식구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몰라요. 하루가 멀다 하고 손자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다보니 까루는 손자들 이름 외우는 일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어렵다며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답니다.     


"오, 네가 미루구나."그러면

"아닌데요. 할아버지. 전 바투에요."그러고,      

마로가 "할아버지 편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하면,

"오, 치오구나. 너도 잘 잤니?" 그런답니다.     

심술 난 마로가 "할아버지. 전 마로란 말이에요."하고 소리치면,

"에구. 내가 늙어서 머리가 영 나빠졌구나." 하면서 애꿎은 머리만 긁적이며 웃고 말지요.     

그래도 아침이면 아들 딸 손자 손녀까지 다 모아놓고 

"자, 오늘도 코스모스 꽃이 피는 걸 발견하면 이 할애비한테 즉시 알려줘야 한다. 알겠지?"하고 말한답니다. 그러면 서른 마리가 넘는 까루 식구들이

"네, 아버지."

"네, 할아버지." 하면서 큰 소리로 대답하지요.     


오늘은 아침부터 할아버지 까루가 기분이 좋아 보여요. 분명히 기분 좋은 꿈을 꾼 모양입니다. 아침을 먹고 구름이 산을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멀리서 바투가 쪼르르 달려왔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이마에는 채 마르지 않은 땀이 아침이슬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습니다.     


"하, 할아버지!"

바투는 숨이 막히는지 다음 말을 잇지 못합니다.

"할아비 도망 안 가니까 천천히 말하거라. 미루야."

까루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합니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바투보고 또 미루라고 불렀네요.

"산허리에 드디어 코스모스가 피었어요."

바투도 가슴이 콩콩 뛰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어요.     


이 소식은 곧 모든 동물에게 알려졌어요.

물론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는 리초와 따오에게도 말이죠.

"리초. 드디어 코스모스가 피었대."

"빨리 코스모스 꽃이 피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했는데."

리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황홀한 표정으로 따오를 바라보았어요.

"신랑 신부 뭐 해!"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동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리초와 따오는 그렇게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지요.

축복이 햇살처럼 가득했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쁜 걸까?"

리초가 따오를 보며 물었습니다.

"당연하지. 어제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걸 보고도 몰라?"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나쁘지는 않을 거 아냐."

"이런, 네 엄마를 죽인 걸 알면서도 너는 그런 소릴 하니?"

따오는 한심하다는 듯이 리초를 쳐다보았습니다.

휴, 리초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괴물이 죽인 거지. 사람이 죽인 건 아니잖아."

"그게 그거야. 괴물들이 사람을 배에 넣고 다니잖아. 괴물과 사람은 한편이야."

"지난 번에 길을 건너 올 때 말야. 자동차들이 멈춰 서고 사람들이 막 밖으로 나왔잖아."

"그래. 나도 봤어."

"그 때 아이들 때문에 내 앞으로 온 남자 있었잖아. 그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었어. 깜짝 놀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거든.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았어. 만약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 때 우릴 잡으려고 쫓아 왔을 거야."

리초는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넌 마음이 너무 고와서 탈이야. 네 엄마를 죽인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다니."

따오는 마음이 순수한 리초의 그런 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씨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때로는 힘든 짐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질 우리 가정을 생각해 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해.”

따오는 리초 얼굴을 혀로 핥았습니다. 짭짤한 맛이 느껴지는 게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습니다.

"너, 또 엄마 생각했구나."

"미안.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니? 나도 그런데. 그래도 이젠 우리가 꾸릴 가정을 생각해야 하잖아."

리초는 그렇게 말하는 따오가 좋았습니다.

"알아. 네 마음. 우리 함께 멋진 가정을 만들어 보자."

리초는 따오만 들을 수 있도록 귀에다 대고 살짝 속삭였습니다.     

"쉿!"


갑자기 따오가 낮게 무릎을 구부렸습니다.

"사람 소리가 들려."

리초는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멀리서 두런두런 사람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빨리 숨자. 어제 그 사람들일지도 몰라."

따오와 리초는 다시 리초 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휴, 힘들다. 밑에서 볼 땐 몰랐는데 꽤 높은 곳이네. 여기가 어제 사슴을 놓쳤던 곳이지?"

가죽 조끼를 입은 남자가 바위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습니다.

"맞아. 이 정도는 높아야 동물들도 안심하고 살 수 있겠지. 아, 공기 좋고 기분도 상쾌한데."

텁수부리 남자는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둘렀는데 휘파람까지 불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래. 공기가 이렇게 맑으니, 꽃사슴 잡고 돈 벌고, 삼림욕 하고 건강도 챙기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닌가?"

"그러게. 다음 번에는 우리 아들이랑 같이 와야겠어. 아들 녀석이 좋아서 펄쩍 뛰어 오르겠군,"

"그러면 나는 내 딸을 데리고 와야겠군. 태호도 온다고 하면 따라 나설지도 모르지."

"그러고 말야. 사실은 기막힌 소식이 하나 있지."

갑자기 텁수부리 남자가 목소리를 작게 하여 귓속말로 소곤거렸습니다.

"사실 어제 봤던 사슴 이야기를 아는 사람에게 얘기했지. 그랬더니 값은 최고로 쳐 줄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만 달라는 거야. 살아 있는 상태로 잡아주면 세 배로 더 쳐 줄 수 있대."

"살아 있는 채로 잡는다고?"

조끼 남자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쉿!. 조용히 하게.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텁수부리 남자는 깜짝 놀라며 조끼 입은 남자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구. 여기 들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조끼 남자가 텁수부리 남자의 손을 입에서 떼어 내며 간신히 말했습니다.

"글쎄. 아마 그래도 모르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아."

텁수부리 남자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응, 그래서 덫이랑 올가미를 가져 왔어. 오늘은 덫만 설치하고 갈 거야. 좀 도와주지 않겠나?"

"그래서 자네가 총을 가져 오지 말라고 했군, 좋아. 그렇지만 돈을 받으면 반씩 나눠야 하네."

"당연하지. 자네 몫은 딱 떼어 놓을 테니까 염려 붙들어 매라구."

텁수부리 남자는 덫과 올무를 가방에서 꺼내었습니다.

"요건 창애라는 덫이야. 원래는 새를 잡기 위해 만든 덫인데, 멧돼지라도 한 번 걸리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지. 언젠가는 쓸 데가 있겠지 하고 준비해 둔 건데 오늘 제 몫을 할 거 같아 기쁘군. 특별히 물푸레나무로 만든 거야. 멋있지?“     


"정말 잘 만들어졌는데?"

가죽조끼 남자가 창애를 건네받아 요리조리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 돈을 받으면 아들 녀석 휴학은 면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딸애는 최신형 노트북 사달라고 노래 부른 지가 벌써 1년이 넘었어, 뭐 지금 컴퓨터도 멀쩡해 보이는데, 뭐가 부족한지 요즘에는 얇은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한다면서 노래를 부르는 데 돈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게. 멋지게 일을 한 번 해 보자구."

"하하. 나도 자네 덕분에 아빠 노릇 모처럼 하게 생겼네. 그럼 빨리 일을 시작하자구.“

”근데 산 채로 잡은 동물을 어떻게 하려고 그럴까?“

가죽조끼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낸들 아나. 돈을 비싸게 쳐준다니까 그렇게 하려는 것이지 뭐.“

텁수부리 남자와 조끼 남자가 일어섰습니다. 두 사람은 산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동물들이 다닐 만한 길목에 덫을 놓았습니다. 철사로 만든 올가미는 나뭇잎 따위로 덮어 동물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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