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Aug 28. 2024

(솦속 빨간신호등 2부) 1. 두 사냥꾼

환경생태동화

1. 두 사냥꾼     


탕!

타앙!     


고요함을 깨고 낯선 소리가 뿌리산을 뒤흔들었습니다.    

 

까악 까악.

우르릉 퉁탕탕     


놀란 새들이 깃털을 떨구며 황급히 날아올랐습니다. 놀란 돌멩이들도 산마루에서 우르르 아래로 내달렸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무시무시한 소리였습니다. 불길하고도 기분 나쁜 소리가 오소리 숲을 파고 들었습니다. 소리가 지난 간 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습니다. 킁킁. 무슨 냄새야? 동물들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결코 맛있는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입맛을 떨어뜨리는 이상야릇한 냄새였습니다.     


푸앙!

펑!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크고 깊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얼마 전 따오와 결혼한 꽃사슴 리초는 행복한 단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리초는 음식을 구하러 간 따오 신랑을 기다리다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리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고막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였습니다. 어흥 하고 소리치면 산 전체가 흔들거린다는 호랑이가 나타난 것일까요? 그러나 이곳에 호랑이가 돌아다닐 리가 없습니다. 호랑이는 백두산이나 시베리아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정말 호랑이가 오소리 숲에 있다면 저렇게 여우 싸리가 왕처럼 큰소리치며 다니진 않을 테니까요. 호랑이가 아니라면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리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코를 킁킁거리며 살며시 몸을 낮추었습니다.   

  

"리초. 빨리 숨어."

나뭇가지를 헤치며 따오가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리초는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따오는 뿔이 넝쿨에 걸리는지 자꾸 목을 흔들었습니다. 따오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리초는 따오를 급하게 안쪽으로 잡아 당겼습니다.     


"여기야, 이쪽으로 도망갔어."

리초와 따오가 숨자마자 사람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두 사람이 어깨에 총을 멘 채 두리번거리며 리초네 앞마당으로 다가왔습니다.

"어, 분명히 이쪽으로 지나갔는데 어디로 갔지?"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가 말했습니다. 남자는 키가 컸고 덩치도 바위처럼우람했습니다.

"야, 너무 멋진 사슴이었는데 아깝게 놓쳤네."

그 옆에 있던 가죽 조끼를 입은 남자가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남자는 옆에 서 있는 남자에 비해 키도 작았고 체구도 호리호리했습니다. 눈이 살짝 위로 올라가 매섭게 보였습니다.

"아까 너구리랑 오소리도 봤지? 정말 끝내주는 산이야."

텁수부리 남자도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얼마나 힘있게 털썩 주저 앉았는지 바위 위에 몰래 앉아있던 돌멩이들이 깜짝 놀라 바위 아래로 우당탕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러게 말야. 혹시나 했는데 작년에 회사 동료가 보여 준 사진이 정말이었어."

가죽조끼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구겨진 사진을 한 장 꺼냈습니다.

"아,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그 동물 사진 말인가?"

"그래. 작년에 회사 친구가 뿌리산인가 그 근처에 새로 생긴 터널을 지나다가 기막힌 장면을 목격했다며 찍은 거래. 맨 앞에 있는 새끼 사슴이 정말 귀엽지 않아?"

"정말 귀여운데, 우리 아이들이 보면 애완동물로 기르자고 노래를 부를 것 같네."

"농담은 아니겠지. 사슴은 멸종위기 1급 동물이야. 집에서 기르다가 걸리면 큰일 나. 게다가 이 녀석 한 마리면 값이 얼만데 그래. 차라리 팔면 팔았지 집에서 기르진 못할 거야"

"하하. 맞아. 현실을 생각해야지." 텁수부리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괜히 딴 생각하지 말라구. 오늘 그 사슴만 잡았어도 우리 막내둥이 대학교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었어." 가족조끼 남자는 매서운 눈을 사방으로 훑으며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하긴. 나도 우리 딸애 노래 부르는 아이폰을 사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텁수부리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어쨌든 아직 다른 사람들은 여기 뿌리산에 사슴이 있는 걸 모르니까 소문내지 말게. 야생동물 감시단에서도 알면 큰일이야." 가죽조끼 남자는 텁수부리 남자가 영 못 미더운지 자신의 얼굴을 텁수부리 남자 코 밑에까지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알아알아. 사슴은 우리나라에서 일제 시대 때 멸종되었다잖아. 최근에 환경부에서 겨우 복원하고 있다는데, 이 산 그리고 사슴에 대한 정보는 자네와 나만의 비밀이야. 자네야말로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지 말게. 나는 오히려 자네가 걱정이야. 자네 입은 가볍잖아." 텁수부리 남자는 손으로 가족조끼 남자의 얼굴을 밀어내며 힐끗 숲속을 쳐다보았습니다. 뭔가 소리를 들은 듯 귀를 쫑긋 세웠다가 다시 내렸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 입은 바위보다 더 무거우니 절대 안심하라구.“ 가족조끼 남자는 손으로 어깨에 들쳐맨 엽총을 땅바닥에 탁탁 내리쳤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그만 내려 가야겠어. 깊은 산이라 해가 빨리 떨어진단 말야. 어두워지면 길 잃기 십상이야." 텁수부리 남자가 바지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습니다.

"그래. 설마 하니 오늘 그 사슴이 하룻밤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 가죽조끼 남자도 덩달아 일어났다. 텁수부리 남자와 조끼 남자는 총을 어깨에 메고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일지도 몰라. 오늘 우리는 횡재한 거야. 횡재한 거라구."

텁수루리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따오와 리초는 너무 무서워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리초야, 따오야. 이제 나와도 돼. 모두 내려갔어."

구구가 머리 위에서 말했습니다.

"정말? 이제 나가도 돼?"

리초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 하마터면 잡히는 줄 알았네."

따오가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니?"

리초가 따오에게 물었습니다.

"응, 졸음이 와서 어디 낮잠 잘 데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서 사람이 올라오는 거야."

"아까 그 사람들이구나."

"나는 사람들이 여길 어떻게 왔을까 생각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니까. 사람들도 친구가 될 수 있잖아. 그랬는데, 나를 보고는 갑자기 뭐라 소리치면서 나무막대 같은 것에서 불을 내뿜는 거야.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친 거지. 도망치는 데 새로 난 뿔이 자꾸 나뭇가지에 걸려서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몰라. 리초가 아니었으면 아마 잡혀 죽었을 거야."

"아휴. 끔찍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나뭇가지는 총이라고 하는 거야. 사람들이 우리 동물을 잡을 때 쓰는 건데 한 번 맞으면 살아나기가 거의 힘들어. 오늘 따오가 살아남은 건 정말 기적이야."

구구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데 사람들은 왜 우리를 잡으려고 그럴까?"

리초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대. 동물들을 잡아서 파는 사람들이야. 다른 산에 있는 내 친구도 총에 맞아 잡혀 갔어."

구구가 바위 옆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구구도 그런 사람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리초네 동물들은 하루종일 숲에서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총소리에 너무 놀라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온 산에 옅게 퍼져 나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오소리 숲 동물들은 아침부터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느라 바빴습니다. 어떤 동물들은 따오가 용감하게 도망친 일을 부풀려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따오가 열 번이나 총알을 피했다고도 했습니다.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도 용감하게 일어나 뛰어갔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동물은 리초가 잡힐 뻔했는데 따오가 사람들을 따돌려 리초가 살았다고도 했습니다.

이전 21화 (숲속의 빨간신호등) 2부를 시작합니다 (목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