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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Sep 18. 2024

(숲속 빨간신호등 2부) 3.무서운 올가미

환경생태동화

3. 무서운 올가미     


리초와 따오는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위 앞으로 가자 사람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어떡하지?"

리초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동물들에게 알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많이 다칠 거야."

"그런데 여길 어떻게 나가지? 온통 덫이 깔려 있을 거 아냐."

"그렇구나. 덫이 어떻게 생긴 건지 아까 자세히 봤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구구나 까치 아저씨를 불러 보는 건 어때?"

"그거 좋은 생각이다."     

"구구야!"

"끼리님!"

"우리님!"

"어디 계세요. 좀 도와 주세요."

리초는 어느새 목이 아파 왔습니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그러게. 도대체 구구는 어디에 있는 거야?"

"낮잠 자는 건 아니겠지?"

리초는 바위 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내 마당 바위인데 나쁜 사람들이 여길 앉아 버렸어."

리초는 사람들이 자기 집 주위를 왔다갔다 하는 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은 왜 우릴 잡으려고 하는 걸까?"

리초는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더욱 움츠렸습니다.

"무서워?"

따오가 리초 옆에 같이 앉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여기서 나가지도 못 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누군가 나타날 거야."

따오는 조심스레 리초의 뺨에 얼굴을 갖다 대었습니다.     

싸리는 리초네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무 주위에 사람 냄새가 얼핏 나긴 했지만 되돌아가야 할 만큼 강하게 나진 않았습니다. 리초네 집이 가까워지자 싸리 박사는 사람 냄새 따위는 잊고 말았습니다.

"룰루루 루루루."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습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생각해 보니 리초의 칭찬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리초였지만 싸리는 내심 리초가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 신호등 사건 이후로 싸리는 자기만 생각한다고 동물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리초가 동굴에 갇혀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싸리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리초의 목소리를 듣고 구해 주었습니다. 만약 싸리가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리초는 꼼짝 없이 동굴에 갇혀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싸리 박사님.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죠?"

"응? 으응. 그래."

싸리는 얼떨결에 그러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근데 어떻게 제가 여기 갇힌 걸 아셨어요? 아저씨는 정말 우리 숲에서 제일 똑똑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싸리는 자기 입으로 박사라고 하면서 똑똑하다는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다른 동물들로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듣기는 사실 처음이었습니다.

"고맙구나. 하지만 내가 한 일이 별로 없는데 너무 띄우지 말아라. 괜히 쑥쓰러워지니까."

"아니에요. 아저씨는 최고예요. 거기다가 겸손하기까지 하시구요. 이렇게 좋으신 분인데 왜 다른 동물들은 아저씨 흉을 보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저씨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걸 거예요."

싸리의 얼굴이 소녀처럼 빨갛게 되었습니다.      

싸리는 그 때 일을 생각하자 입이 벙그레 벌어졌습니다.

'리초 녀석이 잘 있는지 궁금하군. 오늘은 바위에서 잘 내려오는 법을 가르쳐 줘야겠어.'

발걸음도 더욱 빨라졌습니다. 겅중겅중 뛰며 산 중턱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뭔가 줄 같은 것이 싸리의 발을 확 잡아챘습니다. 순간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이 싸리의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아악!"

텁석부리와 가죽 조끼 남자가 숨겨놓은 올가미에 싸리가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박사라고 큰소리를 치고 다녔지만 사람이 만든 올가미는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철사로 만들어진 올가미는 싸리 박사의 오른쪽 발목을 사정없이 옥죄었습니다. 

어느새 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으, 너무 아파."

싸리는 이를 앙다물었지만 뼈를 깎아내는 고통에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왔습니다. 이런 고통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갔습니다. 올가미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올가미는 더욱 세게 죄어 왔습니다. 뼈가 하얗게 드러나 보였습니다.

"살려 주세요. 여러분, 도와주세요."

싸리는 박사라고 자랑하던 것도 다 잊은 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모두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으, 리초는 어디에 있을까? 날 도와주면 좋겠는데……."

싸리는 이제 소리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살려 주세요."

정신도 점점 희미해져갔습니다.

"내가 벌을 받는 거야. 그 동안 친구들에게 늘 자랑만 하고, 내 잘난 줄만 알았어. 도와 달라는 손길을 무시했어. 함께 힘을 모아 하는 일은 싫어했지. 그래. 그 벌을 받는 거야. 그래서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거야. 나는 이대로 죽을 거야. 아, 가족들이 보고 싶어. "

싸리의 눈이 서서히 깊은 늪 속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들쥐 아빠 까루는 잠결에 어렴풋이 무슨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킁킁거리며 코를 살짝 내밀자 어디선가 희미하게 피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누가 다쳤나?"

까루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올 때는 늘 조심해야 했습니다. 리초네 숲에서 함께 사는 동물들은 평화협정을 맺고 서로 해치지 않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가끔 몇몇 작은 동물들이 소식도 없이 사라지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까루는 가끔씩 멀리서 솔개나 수리부엉이가 날아와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열두 마리의 새끼 중 벌써 세 마리나 그렇게 잡혀 갔습니다.

"사…알…려……살…려 줘."

얼핏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까루는 냄새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스락. 낙엽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카루는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를 킁킁거리자 멀리서 피 냄새가 희미하게 흘러나왔습니다.      

'누군가 다쳤어. 과연 내가 가서 도와줄 수 있을까?'

까루는 내심 자신의 작은 덩치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나도 싸리 박사처럼 덩치가 크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앞으로 달려가던 까루는 걸음을 딱 멈추었습니다.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낮은 나무가 우거진 곳에 싸리 박사가 죽은 듯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리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얼마나 피가 많이 나왔는지 다리 주변 흙이 온통 벌겋게 변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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