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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Oct 02. 2024

4. 싸리 박사 구하기

생태환경동화

4. 싸리 박사 구하기     

‘싸리 박사가 다쳤구나.’

까루는 순간적으로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리초네 숲 동물들에게 얼마나 얄밉게 굴었는지 모르는 동물이 없을 겁니다. 모른 채 지나가도 아무도 혼내지 않을 거였습니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가족을 괴롭힌 여우라도 그냥 지나갈 순 없어.' 마음 한 켠에서는 싸리를 도와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그냥 저렇게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싸리 박사는 우리 연약한 동물들에게 늘 불안한 존재였어. 특히 들쥐에게는 아주 무서운 적이잖아. 서로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언제 우릴 잡아먹을지 몰라.'

'그래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그냥 놔둘 순 없어.'

까루는 생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옆에 쓰러져 있는 싸리를 보자 불쌍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쓰러져 있다면, 죽어가고 있다면, 있다면 …….'

'그래. 내가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살려 놓고 봐야 해.'

까루는 싸리에게 달려가다 깜짝 놀라 나무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참수리와 솔개가 하늘 위에서 싸리를 내려다보며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음, 이제 어떻게 하지?"

그 때, 피냄새를 맡았는지 족제비 타랑이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왔습니다.

"까루. 무슨 일이야?"

"싸리 박사님이 죽어가고 있어요. 도와주러 가야 하는데…… 참수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저런, 올가미에 걸려들었어. 올가미에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어. 아무리 힘센 동물이라도 안 돼. 다리를 자르지 않는 이상 빠져 나오는 것은 불가능 해."

"다리를 잘라야 한다구요?"

까루는 그 말을 하면서 자기의 다리를 쳐다보았습니다.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까루, 일단 오소리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내가 갔다 올 동안 싸리 박사를 좀 보고 있어,"

타랑은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까루는 어떻게든 싸리 박사 옆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까루는 하늘을 살핀 뒤, 숲을 빙 둘러 싸리 박사 옆으로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박사님. 박사님. 눈을 떠 보세요."

까루는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싸리 박사는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까루는 이빨로 싸리 박사 옆구리를 깨물었습니다.

싸리가 신음 소리를 얕게 내뱉었습니다.

"아직 죽지는 않았어. 이제 어떻게 한담?"

까루는 타랑이 올가미라고 얘기한 물건을 살펴보았습니다. 덩굴처럼 생긴 것으로 동그랗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싸리의 다리를 묶고 있는 올가미는 한쪽 끝이 나무 둥치에 묶여져 있었습니다. 덩굴이라면 까루가 얼마든지 이빨로 끊어낼 수 있습니다. 까루는 이빨로 싸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올가미를 갉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올가미는 덩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철로 만들어져 오히려 까루 이가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내 이빨이 다 부서지더라도 철사를 끊어야 해. 안 그러면 싸리는 죽을지도 몰라."

싸리가 죽어버리면 좋겠다던 좀전의 마음은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싸리 앞에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까루는 먼저 나무와 연결된 양쪽 철사를 이빨로 끊기 시작했습니다. 철사는 나무줄기처럼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빨이 아파 왔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양쪽 나무에 묶여 있던 철사를 겨우 끊어냈습니다. 까루는 싸리 박사 옆에 벌러덩 누워 숨을 하악하악 내뱉었습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숨을 내쉬던 까루는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악!"

하늘에서 빙빙 원을 그리던 솔개가 맹렬하게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피해야 했습니다. 몸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쏟은 탓인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 이대로 죽나 보다."

까루는 그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

"까루야!"

타랑이 숲속 동물을 이끌고 까루에게 달려왔습니다. 동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솔개는 화들짝 놀라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솔개는 동물들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하늘 높이 사라졌습니다.

"휴,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까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까루가 큰일을 했구나."

부엉이 부들 박사가 까루 옆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우리 집으로 옮겨놓으라고 했어."

오소리 할아버지의 딸인 야라가 말했습니다.

"모두 조심해야 돼. 이 산 어디에 이런 올가미가 또 있을지 몰라."

타랑이 소리쳤습니다.

동물 친구들은 넝쿨과 나무줄기를 엮어 싸리를 옮기기 쉽도록 운반대를 만들었습니다. 싸리를 운반대 위로 올렸습니다. 싸리는 아픈지 얼굴을 계속 찡그렸습니다. 운반대 밑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오소리 올리 할아버지가 기침을 심하게 하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가미가 싸리를 심하게 죄고 있었지만 이빨이 좋은 토끼 앵초와 얄라 부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철사를 갉아내기로 했습니다. 얄라와 앵초가 번갈아가며 철사를 갉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싸리 박사의 다리에서는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나왔습니다.

"으, 으"

"정신이 드나 보다."

"물, 물……."

싸리의 입에서 신음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까이에 있던 너구리 뚜루가 쪼르르 옹달샘에 달려가 물을 길어 왔습니다. 나뭇잎으로 물을 한 번 두 번 입으로 넣어주자 싸리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핑-

열심히 갉아 댄 토끼 부부 덕분에 싸리 박사의 발목을 조이고 있던 철사가 끊어져 나갔습니다.

"아악!"

얼마나 아팠는지 싸리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는 기절해버렸습니다.

앵초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잠시 기절한 거야. 앵초, 얄라, 그리고 까루까지. 정말 수고했다. 너희들 때문에 싸리가 살아난 거야. 너희들 공이 커.“

“휴, 다행이다. 싸리 박사가 진짜 죽은 줄 알았어요.”

앵초는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쿨럭쿨럭. 아냐. 이제 죽지는 않을 게야. 쿨럭. 누가 질경이 잎을 구해다 싸매 주렴.”

올리 할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질경이 잎을 어디서 구해 오지?"

부들 박사가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물었습니다.

"그건 따오가 잘 알 텐데."

"앗, 따오와 리초가 보이질 않아."

그러고 보니 리초와 따오만 빼고 모두 다 모여 있었습니다. 

“뭐야. 둘도 올가미에 걸려든 거 아냐?”

청설모 모야와 다람쥐 설마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순간, 리초와 따오도 올가미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동물들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리초야. 따오야!"

동물들은 큰 소리로 외쳐 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거 큰일났군,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멧토끼 앙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가 보고 와야겠어."

올리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가면 큰일 나겠는걸. 어디에 올가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해서 다닐 수가 없어."

타랑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가 가 보고 올게요. 저는 올가미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산비둘기 구구가 나섰습니다. 하늘만 날아다니면 되니까 이럴 땐 새가 좋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리초네 숲속 동물들은 올가미 때문에 모두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올가미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싸리를 통해 몸으로 느꼈으니까요.

"질경이 잎은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타랑이 나섰습니다.

"그러게. 구구랑 타랑 모두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부들 박사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제 싸리를 집 안으로 들여 놓게.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말야."

올리 할아버지는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싸리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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