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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독서] 25. 책이냐, 책읽기냐?

by 봄부신 날

책을 사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책을 읽는 당신은 복에 겨운 사람이다.

[취미가 독서] 25. 책읽기를 좋아하는 걸까, 책을 좋아하는 걸까?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면 대체로 의아해 하면서, 호기심 반, 의심 반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어본다. 집에 책이 많겠죠?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어떤 사람에 비해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축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일반인에 비하면 꽤 많은 축에 속한다. 굳이 밝히자면 대략 3천 권 정도는 된다. 솔직히 일일이 다 세어보지는 못했다. 어떻게 일일이 책 권수를 세어서 몇 권이 된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책은 마치 동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동 거리가 동물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오늘은 안방 책상 위에 있던 책이 내일은 거실 책상 위로 옮겨 가 있고, 그 다음 날은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고 하는 식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책은 어느 헌책방에서 배송되어 오고 있고, 또 누군가에게 책을 보낼 요량으로 차곡차곡 쌓아놓는 책이 있다. 그러니 책이 몇 권 있냐는 질문,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몇 권이 있냐고 정확하게 물어본다면 날밤을 새며 책이 이동하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고 다시 세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수준의 질문을 좋아한다. "대충 몇 권 정도 되나요?" 그러면 나도 대충, 한 천 권에서 이천 권 중간 어느 정도 됩니다. 라고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럼 이 숫자는 어떻게 나왔느냐. 하고 궁금해하거나 또는 의심할 수 있다. 아무리 대충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한 집에 이천 권의 책을 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거짓없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 가족 동의 하에 거실 한쪽 벽은 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세로 5단짜리 책장이 가로로 8개 있으니 총 40칸의 책칸이 있다. 그리고 안방에 마찬가지로 세로 5단짜리 책장이 가로로 2개 있다. 책장 칸수로만 계산한다면 총 56개 칸이 있는 셈이다. 내가 책 권수를 어림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칸에 대략 몇 권의 책이 꽃혀 있느냐를 계산해보고 곱하기 56을 하면 된다. 정확하진 않지만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 왜냐하면 책장에만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니라, 안방 바닥에 쌓여 있는 책만 해도 족히 50에서 100권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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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한 칸에 꽃혀 있는 책 권수를 세어보니 한 쪽은 37권, 다른 한 쪽은 34권이다. 그러면 대략 35권이 꽂힌다고 가정하고 곱하기 56을 해보자. 35x56=1960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산술적인 계산만 해도 1900권은 나온다.

그러면 이제 사람들은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럼 저 책을 다 읽은 건가요? 여기에서 나는 잠시 틈을 두고 망설인다. 대답은 이렇다. 반은 읽었고 반은 안 읽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책을 반이나 안 읽었다는 말에 내 취미를 이상한 수집병으로 보기 시작한다.

솔직히 정확히 세어보지 않아서 반이나 안 읽었을까 싶기는 하다. 대충 훑어보면 안 읽은 책도 꽤 보인다. 그렇다면 왜 안 읽은 책이 그렇게 있으면서 또 책을 사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에 실린 글을 잠시 가져와 본다,

책중독자의 존재 이유는 두 가지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 그것이 삶을 가치 있게 한다. 그런데 예상 가능하듯이, 이는 우리 삶의 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악영향은 우리 책중독자들을 심히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톰 라비,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039쪽)

물론 내가 책 중독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놔두고, 책을 많이 좋아하니 중독 어느 지점에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 책중독자의 존재 이유는 톰 라비에 따르면 단 두 가지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이다. 책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책을 사고, 책을 읽는다.

우리 책중독자들은 독서등이 없는 채로 누워서도 읽고 어두운 식당에서도 읽고 덜커덕거리는 시내버스 안에서도 읽고 시에라 산맥에서 배낭을 지고 걸으면서 불빛에 의지해서도 읽고 온갖 곳에서 책을 읽는다. 어디에서나. (같은 책 33쪽)

나도 여기에 빠지지 않는다.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고, 출근하는 광역버스의 희미하고 침침한 실내등 아래서도 책을 읽는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등에 걸리면 그 잠깐의 시간을 못 참고 책을 잡을 때도 있었고, 책을 읽다가 버스에서 내리면 그 다음 장이 궁금하여 걸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멀리 지방으로 출장이라도 가게되면 출장 가방 안에는 회의 서류보다 갈 때 읽을 책, 올 때 읽을 책으로 가방이 꽉 찬다. 반드시 두 책은 달라야 한다. 하나가 소설이라면 하나는 인문학이거나 자연과학 책이어야 한다. 소설을 읽다 좀 지루해지면 다른 책을 펼칠 수도 있다. 인문 철학 책을 읽다 조금 지루해지면 다른 책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럴러면 최소한 세 종류의 책을 넣어 가야 한다. 내려갈 때 소설을 읽다가 잠시 쉬면서 다른 책을 펼치고, 올라올 때 철학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잠시 쉬면서 다른 책을 펼치고. 이때 다른 책은 소설책이나 철학책이 아닌 다른 책이다. 그래야 한다. 그래서 가방이 빵빵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 읽기가 취미인 사람은 수시로 책을 살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서 이 책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얇은 책, 두꺼운 책, 무거운 책, 가벼운 책, 신간도서, 수상작 등 끊임없이 책을 사야 한다. 책을 읽다가 다른 책 이야기가 나오면 즉시 검색해서 카트에 집어 넣는다. 책을 사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입니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지 마라.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고 책 읽기를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지 그래요?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빌려서 읽은 책도 많다. 하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왜 책을 사는지. 책을 사야만 하는지. 내 지갑이 얇아지고 가난해져도 책은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꼭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 뒤로 가도 좋고 옆으로 가도 좋다. 책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평온해지고 알파파가 뇌에서 분출된다. 도파민이 나오고 행복한 상태로 된다. 그러니, 당신도 책을 사라. 책은 사는 것이다. 그래야 읽게 된다.
책을 사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책을 읽는 당신은 복에 겨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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