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미가 독서]26. 진짜 책벌레가 있다

책벌레이야기

by 봄부신 날

[독서가 취미] 진짜 책벌레가 있다.

사전에 따르면 “책벌레”는 ‘지나치게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데만 열중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책벌레’는 ‘벌레’가 아니라 ‘사람’인데 벌레같은 사람으로 낮춰 부르는 말이다. 벌레는 낮추어서 버러지, 미물 등으로 부르며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벌레를 붙이면 좋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책벌레’와 유사한 느낌의 벌레로는 ‘공부벌레(표준어는 ’공붓벌레‘다)’가 있다.


이렇게 ‘책벌레’는 책만 읽는 사람을 놀림조로 부르는 말인 줄 알았는데, 2001년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슈나이더가 진짜 책벌레(bookworm)을 발견했다. 우리가 흔히 ‘쌀벌레’라고 부르면 쌀 속에 살면서 쌀을 갉아 먹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를 말한다. 그러니까 쌀벌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쌀과 공생하지만 쌀을 양분으로 삼아 쌀을 못쓰게 만드는 나쁜 벌레인 것이다. 즉, 벌레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대상을 못쓰게 만든다. 그렇지만 책벌레는 결코 책을 파먹고 살지 않는다. 책벌레가 처음 발견된 곳은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소설 속 저자 이름에 적힌 활자 Q의 꼬리 부분에서였다. 최초 발견자는 그렇게 판단했지만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종이와 잉크의 원자 알갱이 속에 묻혀 있었다. 최초 발견자가 ‘책벌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밝힌 부분은 나중에 책벌레의 더듬이가 활자를 찾아 움직여 그렇게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4-09-24 책벌레3.jpg


사람들이 ‘책벌레’라 부르는 사람은 희귀병 중의 하나인 서적병(book diesease)에 걸려 낮이나 밤이나 책을 읽어대는 사람을 가르킨다. 2001년 루마니아의 전기 기사가 발견한 책벌레는 인간이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지를 밝혀주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서적병’은 문자의 발생과 함께 나타나 먼 옛날부터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했다. 이 병에 걸리면 일생 동안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을 멈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병에 걸리면 책이 없는 장소에서의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 ‘읽고쓰는증후군’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병은 의학과 기술이 발전한 현재까지도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짜 ‘책벌레’가 발견되면서 책벌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연구로 인해 서적병의 완치는 불가능해도 왜 인간이 읽고 쓰는 일에 집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원인 추적은 가능해졌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활자 인쇄가 정보를 축적하고 분배하며 빨리 회수하는 데 적합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활자에 숨어있는 책벌레가 가진 최대의 힘을 파악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이론은 그 당시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책벌레의 존재와 그것이 가진 지구적인 영향력을 암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책벌레의 존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책을 통해 책벌레의 수와 의식의 확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책벌레의 정체는 무엇인가. 서적 바이러스(book virus)로 칭하자는 연구자도 있으나 책벌레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벌레인지 바이러스인지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는 생물도 무생물도 아닐 수 있다는 예감도 들고 있다. 광우병의 원인체인 프리온(prion)도 유전자가 없는 물질이고 바이러스도 세균도 아닌 감염성 단백질 입자라고 밝혀진 바 있다.


책벌레가 21세기까지 발견되지 않은 까닭은 너무 작기 때문이었다. 또 책벌레가 활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사람의 체내 뇌세포인 뉴런에서만 가능하다. 책벌레는 생체 안에서만 기생하며 사람의 생명활동이 정지하면 동시에 책벌레도 사멸하여 무기질 또는 무생물로 변화한다. 따라서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뇌 안을 조사하는 방법적인 어려움이 있어 그 존재를 밝기기가 어렵다.


한편 책에 잠복해 있을 때는 매우 작은 미립자 형태라서 특수한 현미경이 아니고서는 관찰이 어렵다. 최근 시료에 직접 전자를 발사하지 않는 고성능 현미경인 주사형 전자현미경이 개발되어 관찰한 결과, 그동안 발견된 바 없는 더욱 작은 미립자 알갱이가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는 책벌레의 알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는 책벌레의 종류는 총 257종이다. 크게는 읽기벌레와 쓰기벌레로 양분된다. 읽기벌레는 소설읽기벌레, 작가애호벌레, 잡지구입벌레, 장편읽기벌레, 중고책구입벌레 등으로 갈라지고, 쓰기 벌레는 소설쓰기벌레, 동인지쓰기벌레, 응모벌레, 자비출판벌레, 일기쓰기벌레 등으로 나뉘어진다.


책벌레의 최대 천적은 사람인데, 이때의 사람은 책벌레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만을 이른다. 책벌레 감염된 사람은 모두 책이나 활자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많은 책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그렇게 해서 책벌레가 더욱 많은 책에 서식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책벌레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책을 멀리하고, 책벌레가 싫어하는 전자기파 앞(텔레비전, 휴대폰 등)을 가까이 하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질 않는다. 이것은 책벌레 입장에서는 최대의 위기 상황을 직면하는 것이다. 실제로 책벌레의 천적을 알아보기 위해 각 국가별로 책을 모아 그 속에 서식하는 책벌레의 수와 종류를 조사해 보았는데, 국민 한 사람의 연간 독서량과 책벌레 개체 수 사이에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본다면, 한국은 책벌레 멸종 위기 국가에 해당될 것이다. 인간이 책에게 보내는 뜨거운 시선이 없어지면 책벌레들의 체력이 저하되어 개체 수가 감소하는데, 비감염자가 많은 국가일수록 그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디지털 IT 강국인 대한민국은 2023년부터 초중고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디지털화가 완료되는 2026년이나 2027년 경이 되면 모든 교과서에 서식하던 책벌레 역시 완전히 멸종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만 책벌레를 사육할 수 있는 방법이 전해지고 있어 완전한 멸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책벌레 감염자들은 전 세계를 책벌레로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옆구리에 책을 끼고,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세상, 생각만 해도 날아갈 듯 미소가 생기지 않는가.


초급 사육 방법으로는 야생에서 키워진 튼튼한 책벌레를 기르는 것이 좋은데, 가령 학교도서관, 서점, 헌책방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책벌레 사육사로 살아가면 도서관 가는 것이 즐겁고 서점에 가는 것이 행복해진다. 특히 어떤 책에 어떤 책벌레들이 사는지를 대략 알게 되어 책 읽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해 나가다보면 처음 독서할 때의 책 목록과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비교가 되면서 자신의 독서 내공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벌레 사육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려면 우선 텔레비전 끄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책벌레는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며 오랜 시간 전파에 길게 노출되면 사멸하고 만다. 사람의 시선이 책벌레로 향하느냐, 텔레비전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책벌레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잠시 접어두고 모든 가족이 거실이나 안방에 모여 책을 읽는 것으로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라. 매일 한 시간 정도씩만 진행해도 책벌레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책벌레는 당신을 사랑한다. 처음 책벌레가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책벌레가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걱정했다.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리석은 인간은 분서라는 행위를 통해 책을 불태워 없앰으로써 책벌레도 같이 없애려 했고, 금서 지정을 통해 책을 읽지 못하게 함으로써 책벌레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했다. 앞으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스티븐 영’이 지은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 <책벌레 이야기>라는 책을 참조해 책벌레를 조명해 보았다. 당신은 어떤 책벌레에 감염되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아래 그림을 보고 자신의 책벌레 유형을 알아보자. MBTI보다 훨씬 정확할 것이다.


2024-09-24 책벌레2.jpg
2024-09-24 책벌레1.jpg
2024-09-24 책벌레0.jpg


keyword
이전 25화[취미가 독서] 25. 책이냐, 책읽기냐?